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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에 선 '개 구충제'... 기적의 항암제인가, 해프닝인가
논란에 선 '개 구충제'... 기적의 항암제인가, 해프닝인가
  • 양원모 기자
  • 승인 2019.11.06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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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유튜브 영상 통해 "펜벤다졸, 말기 암 효과" 인식 확산 
화제의 인물은 조 티펜스, 펜벤다졸 통해 3개월 만에 암 완치 주장... "2016년 8월 소세포 폐암 3기 선고 이후 2017년 암세포 완전 관해"
의료계, 티펜스 주장에 회의적... "사람용 구충제도 큰 효과 없어"

[바이오타임즈] 제약계가 모종의 이유로 외면해온 ‘기적의 항암제’가 이제야 진가를 드러낸 걸까. 암 환자와 가족들의 간절함이 빚어낸 해프닝일까. 

개 구충제 ‘펜벤다졸(상품명 파나큐어)’이 난데없이 말기 암 치료제로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다. 한 외국 남성이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말기 암을 완치했다는 주장이 국내에 소개되면서다. 정부와 의료계는 부작용 등을 이유로 만류에 나섰지만, 환자나 보호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어차피 ‘죽음’보다 더 큰 부작용은 없다는 것이다. 

구충제로 암세포를 굶겨 죽인다? 

시작은 지난 9월 한 한 국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10분짜리 영상이었다. 2016년 8월 소세포 폐암으로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은 미국인 조 티펜스는 수의사 권유로 우연히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했는데, 3개월여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것. 해당 영상은 암 환자와 가족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게재 2주 만에 조회 수 30만 회를 넘기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영상에서는 조 티펜스가 시도했다는 복용법도 소개됐다. 펜벤다졸과 비타민E, 커큐민, 칸나비디올(CBD) 오일을 함께 복용하는 방법으로 하루 복용량과 구체적인 복용 횟수까지 언급됐다. 영상에 따르면 조는 이 방법으로 2017년 1월 병원에서 “암세포가 완전히 관해(소멸)됐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2018년 1월 PET CT 촬영 때도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 티펜스 복용법의 핵심은 “구충제가 암세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일부 동물 실험에서 펜벤다졸이 암세포의 영양분 공급을 차단하는 효과가 확인됐고, 이는 사람에게도 유효하다는 게 조 티펜스와 펜벤다졸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실제로 2018년에 국제 과학 저널 '네이처'에는 펜벤다졸이 암세포의 미세 소관 중합을 억제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한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월드빌리지 매거진TV'
출처: 유튜브 채널 '월드빌리지 매거진TV'

의료계가 펜벤다졸에 회의적인 이유

펜벤다졸은 기존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재까지 의학계의 대답은 "아니오"다. 지난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한암학회와 함께 "펜벤다졸을 고용량으로 투여할 경우 혈액,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복용 자제를 권유했다. 식약처는 "특히 항암제와 함께 구충제를 복용하면 항암제와 구충제 간 약물 상호작용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펜벤다졸과 비슷한 방법으로 암세포를 억제하는 항암제는 이미 출시돼 있다. 미세소관억제제(Antimicrotubule agent)로 빈카 알칼로이드와 탁센 계열 약물에 속하는 △빈크리스틴(1986년 허가) △빈블라스틴(1992년 허가) △비노렐빈(1995년 허가) △파클리탁셀(1996년 허가) △도세탁셀(2006년 허가) 등이다. 

최근에는 펜벤다졸 대신 사람용 구충제 '알벤다졸'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펜벤다졸보다 체내 흡수력이 좋고, 안전성도 검증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일부 약국에서는 알벤다졸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식약처는 알벤다졸 역시 펜벤다졸과 마찬가지로 고용량 투여 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복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펜벤다졸(상품명 '파나큐어') (출처: 아마존)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펜벤다졸(상품명 '파나큐어') (출처: 아마존)

제약업계가 펜벤다졸 항암 효능 고의로 감췄다?... “합리적이지 않아” 

정부와 의료계의 경고에도 펜벤다졸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삶의 끝이 정해진 상황에서 ‘죽음’보다 더 큰 부작용은 없다는 게 환자와 가족들 생각이다. 한 암환우 가족은 “아무것도 소용없고 죽을 날이 코앞인 사람들은 뭔들 안 해 보고, 뭔들 희망을 걸어보지 않겠느냐”며 “선택은 본인 몫이고 그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다. 각자 현명한 판단으로 조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제약업계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일부러 감췄다는 ‘음모론’ 같은 주장도 제기된다. 펜벤다졸 2팩(20알)의 원래 가격은 2만원대로 알려지며 알벤다졸은 구충제 열풍 전까지 2알에 1,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항암제 출시는 적어도 수조원의 이익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를 제약사가 감출 이유가 있을까”라며 “(펜벤다졸은) 항암제로써 효과가 미미해 포기했다고 보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바이오타임즈=양원모 기자] news@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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