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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일으키는 메커니즘, 바로 ‘이것’이었다
뇌전증 일으키는 메커니즘, 바로 ‘이것’이었다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1.08.2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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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3개 학과 공동연구팀, 다학제적 접근 통해 뇌전증 발병 기전 규명
극소수의 신경세포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 아냐
돌연변이가 주변 정상세포의 이상 활동 유도해 전체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 촉발
뇌전증에 대한 더욱 정교한 치료 기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연구진들이 극소수의 신경세포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신경망의 과다 활동 상태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 뇌전증의 발병 원인 및 치료법 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오타임즈] 뇌전증은 간질이라고도 불리는 대표적 신경질환의 하나로, 사회적 편견뿐만 아니라 심하면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이기에 의학 및 신경과학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

뇌전증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FCD(Focal Cortical Dysplasia, 국소 피질 이형성증)로, 태아 상태에서 두뇌가 성장하는 도중 신경세포(뉴런)가 두뇌 피질의 각 영역으로 이주(Migration)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난치성 뇌전증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뇌전증 환자가 일으키는 발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소 피질 이형성증은 약물치료에 대해 저항성을 보여 미충족 의료수요가 요구되는 질환이다.

최근 유전체학 연구 기법이 발전하면서 이 FCD의 원인이 대뇌 발달 과정에서 일부 신경 줄기세포에서 발생한 mTOR 경로상의 체성유전변이(MTOR, TSC, DEPDC5)임이 알려졌다. 하지만 어떠한 기전을 통해서 이들 유전자 변이들이 뇌전증을 포함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의 표현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FCD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발병 기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소수의 신경세포에서 기원하는 돌연변이가 어떻게 전반적인 뇌 신경망의 활동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학계의 많은 관심 주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들이 극소수의 신경세포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신경망의 과다 활동(Hyperactivity) 상태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 뇌전증의 발병 원인 및 치료법 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유전체학, 신경생물학, 계산뇌과학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를 통해 발견한 뇌전증 관련 발작활성도의 완화 효과(사진=카이스트)
유전체학, 신경생물학, 계산뇌과학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를 통해 발견한 뇌전증 관련 발작활성도의 완화 효과(사진=카이스트)

◇카이스트 3개 학과 공동연구팀, 다학제적 접근 통해 뇌전증 발병 기전 규명

KAIST 의과학대학원 이정호 교수, 바이오및뇌공학과 백세범 교수, 생명과학과 손종우 교수 공동연구팀은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MTOR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약물 저항성이 높은 뇌전증이 발병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 연구는 세포 내 유전학적인 관점에서부터 단일 신경세포의 전기생리학, 이로부터 근접한 거리에 있는 뇌 조직의 네트워크, 그리고 뇌 전체 수준에서의 신경망 수준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실험 및 시뮬레이션 연구가 이루어져, 뇌전증의 복잡한 발병 메커니즘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성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국소피질 이형성증 환자의 실제 조직과 같은 질환을 가진 동물 모델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개별 신경세포의 체성유전변이가 신경망 수준의 발작도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원리를 규명했다.

◇뇌 체성유전변이가 주변 정상 신경세포에 특정 변화 유도해 전체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 발생

먼저 연구팀은 이러한 체성유전변이는 뇌 조직의 5% 이하인 적은 수의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며, 해당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성질이 정상 세포와는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대다수 정상 세포를 포함한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돌연변이는 매우 적은 비율의 신경세포에만 국한돼 있어, 이 세포들 자체의 전기적 성질 변화만으로는 전체 신경망의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뇌전증에서 보이는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소수 신경세포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더라도 대다수의 신경세포들은 여전히 정상 상태이며, 이들 간의 대다수 시냅스 연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후속 실험을 통해, 뇌전증 발작을 유도할 수 있는 활성도가 MTOR 체성 유전변이를 가진 신경세포가 아니라 그 세포들 주변의 변이가 없는 신경세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신경세포의 활성도가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세포가 주변 대다수 비변이 신경세포에 특정 변화를 유도하고 이로 인해 전체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가 발생한다는 뜻으로, 뇌 체성유전변이로 인한 비세포 자율성 활성도(Non-cell Autonomous Hyperexcitability)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이에 착안해 추가적인 동물실험과 수술 후 환자 뇌 조직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MTOR 체성유전변이를 가진 세포에서는 ADK(Adenosine Kinase, 아데노신 키나제) 유전자가 과발현되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이로부터 주변 대다수 비변이 신경세포의 네트워크 체계가 교란돼 과활성도가 유도되고, 더 나아가 전체 신경망 수준의 과다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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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세포자율성 활성도의 한 예를 제시한 이번 연구는 뇌전증에 대한 더욱 정교한 치료 기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게티이미지뱅크

◇뇌전증에 대한 더욱 정교한 치료 기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이번 연구는 돌연변이가 발생한 소수 신경세포의 이상 발화 활동 자체가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 바깥 공간의 변화를 거쳐 간접적으로 주변 정상 세포들의 이상 활동을 유도한다는 새로운 비세포자율성 활성도의 한 예를 제시한다.

이러한 기전으로부터 병태생리의 핵심 요인을 타깃하여, 뇌전증에 대한 더욱 정교한 치료 기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아울러 자폐증, 정신분열증, 치매, 그리고 교모세포종 등 뇌 체성유전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다른 뇌 질환에서의 비슷한 기전 및 설명이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이정호, 백세범, 손종우 교수는 “약물 저항성이 높아 기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던 뇌전증의 발병 원인에 대해 한층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ˮ라며 “한 분야의 실험이나 연구 기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유전체학, 신경생물학, 계산뇌과학에 걸친 다학제적 접근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효과적인 공동연구의 좋은 예시였다ˮ고 언급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 고현용 박사, 바이오및뇌공학과 장재선 박사, 생명과학과 주상현 학생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신경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 ‘애널스 오브 뉴롤로지 (Annals of Neurology)’ 7월 29일 자에 게재됐다(논문명: Non-cell autonomous epileptogenesis in focal cortical dysplasia)

 

[바이오타임즈=정민아 기자] news@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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