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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마다 이식 결과 천지 차이 ‘인공 망막’, 성능 끌어올릴 실마리 찾았다
환자마다 이식 결과 천지 차이 ‘인공 망막’, 성능 끌어올릴 실마리 찾았다
  • 양원모 기자
  • 승인 2020.07.20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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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임매순 박사 연구팀, 하버드대 연구팀과 생쥐 대상 인공 망막 실험 결과 16일 발표
2002년 이후 인공 각막 기술 진화했지만, 수술 경과는 환자마다 제각각... 원인은 망막 변성 수준
망막 변성 심할수록 뇌로 전달되는 신경신호 일관 떨어져

[바이오타임즈] 똑같은 이식 수술을 받아도 환자마다 결과가 천지 차이였던 ‘인공 망막’의 성능을 끌어올릴 실마리를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 인공 망막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인 망막 변성 질환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다. 망막 변성 질환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세포가 파괴돼 시력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유전병의 하나로 4,000명 가운데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 임매순 박사팀은 미국 하버드대 쉘리 프리드 교수 연구팀과 논문을 내고 망막 변성 질환의 진행 경과에 따라 인공 시각의 신경신호 패턴이 바뀌는 것을 동물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유전자 조작된 쥐들의 신경 세포에 반복해서 전기 자극을 주고 신경신호를 살펴봤더니 망막 변성이 심할수록 신호 내용의 일관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키보드 자판 ‘ㄱ’을 눌렀는데 ‘ㄴ’, ‘ㄷ’이 입력됐다는 소리다.

출처: Pixabay
출처: Pixabay

‘망막 변성 수준’이 신경신호 내용을 좌우한다

망막은 안구 안쪽을 층층이 싸고 있는 막이다.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며 복잡한 신경 조직으로 구성돼 이식이 어렵다. 망막 변성은 외부의 빛을 시각 정보로 바꿔주는 광수용체가 기능을 못 하는 상태다. 다만 광수용체 변성이 와도 신경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인공 망막은 이 점에서 착안했다. 신경절 세포에 올바른 신경신호만 입력해주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신경절 세포는 신경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출력 세포다.

인공 망막은 실제 망막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먼저 카메라로 수집된 영상 정보를 컴퓨터 프로세서를 통해 전기 신호로 바꾼다. 이어 신호를 외부 안테나로 송신한다. 외부 안테나는 이 신호를 망막에 이식된 초소형 전자 패드로 보내 시신경(신경절 세포)을 자극, 신경신호를 생성한 뒤 뇌로 전달한다. 즉 ‘카메라 -> 컴퓨터 프로세서 -> 외부 안테나 -> 전자 패드 -> 뇌’ 5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만들어진 신경신호의 질이 환자마다 너무 달랐다. ‘K’라는 전기 자극을 줘도 ‘L’, ‘M’, ‘N’ 등 전혀 다른 신경신호가 생성됐다. 연구진은 망막의 변성 정도에서 답을 찾았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변성된 망막에서는 시선을 고정하고 있더라도 계속 서로 다른 신경신호가 뇌로 전달돼 전기 자극으로 만들어진 인공 시각 정보 인지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망막 변성이 진행될수록 인공 망막으로 생성되는 신경신호에 불량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람의 실제 망막 모습 (출처: Filckr)
사람의 실제 망막 모습 (출처: Filckr)

기술 발전에도 이식 결과는 ‘들쑥날쑥’

인공 망막의 역사는 짧다. 세계 최초의 인공 망막 수술은 2002년 미국에서 있었다. 40대 중반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테리 브라이언트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로스키(Roski) 안과 연구소에서 인공 망막 이식 수술을 받고 시력 일부를 회복했다. 테리는 수술 몇 주 만에 빛을 탐지할 수 있게 됐고, 얼마 안 가 움직임 식별이 가능해졌다. 시력을 잃고 ‘어둠의 감옥’에 갇힌 지 13년 만이었다.

브라이언트에게 이식된 인공 망막은 전자 패드 내 전극이 16개뿐인 시제품이었다. 전극이 많을수록 시신경 자극이 활발해져 시력도 올라간다. 2013년 로스키 안과 연구소는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전극 60개가 달린 인공 망막 ‘아르구스-2’의 미국 식품의약처(FDA) 승인을 받았다. 2017년에는 국내 첫 아르구스-2 이식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로스키 안과 연구소의 '아르구스-2' (출처: 세컨드사이트 홈페이지)
로스키 안과 연구소의 '아르구스-2' (출처: 세컨드사이트 홈페이지)

그러나 기술 발전에도 환자들의 이식 수술 결과는 들쑥날쑥했다. 한 임상시험에서는 이식 환자 29명 가운데 13명이 물체 모양을 인지하고 구분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8명은 물체 위치만 확인했고, 다른 8명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식 환자의 약 1/3은 똑같이 수술을 받았어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인은 연구팀이 이번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불명으로 남아 있었다.

 

“망막 변성 진행 정도 검토해 이식 대상 및 시기 결정해야”

의료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인공 망막의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의료계 종사자는 “인공 망막은 개발 자체가 까다로운 분야”라며 “망막 변성 질환 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관련 기사 아래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큰 고통”이라며 “앞으로 더 발전돼 인공 망막 장치의 이식 성공률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임매순 박사는 논문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좋은 품질의 인공 시각을 위해서는 망막 변성 진행 정도를 면밀히 검토해 인공 망막 장치 이식 대상과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변성이 많이 진행된 망막에서도 우수한 인공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 신경신호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 학술지 최신 호에 게재됐다. 

[바이오타임즈=양원모 기자] ingodz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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