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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늙는 기술] 친일파 선조들 탓에 빨리 늙고 일찍 죽는다면
[더디게 늙는 기술] 친일파 선조들 탓에 빨리 늙고 일찍 죽는다면
  • 상선약수(上善若水)
  • 승인 2022.01.20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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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타임즈] (들어가는 말) 상선약수는 의사도 아니고 관련된 학위도 없습니다. 다음의 글은 한의학과 카이로프랙틱, 요가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으나, 문헌적 근거는 없습니다.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나 늦추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상식에 기반한 가설의 세계를 펼쳐나가겠습니다. 그럴싸하다 싶으시면 따라할 수는 있겠으나, 본 칼럼이 그 결과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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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이나 기타 증상을 계기로 자신의 건강이 나빠졌음을 알 때, 몇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해결책들은 대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는데, 그 해결책 중 뭔가를 택하면 다른 해결책은 할 수 없게 된다. 그 대안 중에 한의학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 때, 굳이 한의학이라서 피하는 경우가 있다.

한의학을 쉽게 배제하는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 병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젊어서 건강 문제로 불편을 겪어본 사람들은 서양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병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병원부터 찾아가고, 의사의 말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한다. 40대나 50대의 비교적 건강하던 사람이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리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다가 건강이 악화하는 경우가 실제로 종종 있다.

오늘은 한의학이라서 피하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이 뭔가를 결정할 때, 대개는 합리적인 사고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 70% 이상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점심으로 뭘 먹을지 결정하는 정도의 사소한 일은 스스로 판단하는데, 자식의 진로 문제나 취업, 채용, 결혼, 투표 등 중요한 결정일수록 합리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중국은 중의학 병원이 서양의학 병원보다 찾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일본의 서양 의사들은 가미소요산이나 오령산 같은 고전적인 처방을 쓰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병만 고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이하다. 한의학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환자들은 물론, 한의사들조차도 그러하다.

한 번은 아내가 열이 높이 올라서 동네 한의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감기에 걸린 지 3주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열이 40도에 육박하고, 해열제가 안 듣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의사를 찾아갔는데, 반응이 그랬다. 이렇게 열이 높은데 왜 병원에 가지 않고 한의원에 왔냐고. 내일은 병원에 가라면서 일단 약을 한 첩 지어줬는데, 그 한의사의 모습은 겁먹은 모습이었다. 왜 날 더러 병을 고치라는 거냐고. 이처럼 환자와 의사를 불문하고 한의학을 못 믿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조선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다. “너는 정말로 조선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지. 조선 사람처럼 예의 바르고 의리 있고 약한 사람 편에 서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들을지, 아니면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사람이라는 비아냥으로 들을지.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 나빠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그런 부정적인 느낌을 반영한 말이다.

동의보감이나 사상의학은 조선의 지식인데, 이걸로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조선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의사들도 우리나라 사람이고, 조선에 대해 부정적일 테니, 한의학으로 병을 고치라고 하면 자신이 없을 것이다.

나도 조선이 싫었다. 왜 내가 그랬는지 내 마음을 살펴보면,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조선은 못난 사람들의 나라다. 우리나라 어른들 대부분은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대부분이 조선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1980년대 후반에 신문에 김용옥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하버드대를 유학하고 돌아온 엘리트 학자가 조선의 문명이 서구보다 앞섰다고 하는 말을 읽으면서, 국수주의 내지는 억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백남준 화백도 비슷한 말씀을 했다. 클래식의 본고장이라서 오스트리아에 가 봤는데 별거 없더라고. 그때 나는 백남준 화백의 말도 국수주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따로 시간 내고 돈 들여서 해방 전후사에 관해 공부하고, 조선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다음에는 조선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김용옥이나 백남준처럼, 나도 조선 같은 나라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꽤 발견했다. 신상옥 감독의 <춘향전>을 보고 감동해서 한국학을 전공하기로 하고, 마침내 한국인이 된 박노자 교수, 적도 기니 출신으로 어려서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에서 자랐는데, 어른이 되어 한국을 너무너무 그리워했던 모니카 마시아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였는데 한국에서 살아보고는 국적을 바꾸기로 한 다니엘 튜더 등등. 그리고, 식민지 조선을 보고 감탄한 독일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가 만든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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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은 사람을 군자와 소인,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눈다. 군자(君子)는 예의를 아는 사람, 또는 의(義)가 동기가 되어 행동하는 사람이다. 소인(小人)은 예의를 모르는 사람, 또는 이(利)가 동기가 되어 행동하는 사람이다.ⓒ게티이미지뱅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한의학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말이 없이 논리를 전개한다면 ‘조선은 후졌는데 한의학은 괜찮다’라는 말이 되고,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은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였다. 성리학은 사람을 군자와 소인,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눈다. 군자(君子)는 예의를 아는 사람, 또는 의(義)가 동기가 되어 행동하는 사람이다. 소인(小人)은 예의를 모르는 사람, 또는 이(利)가 동기가 되어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사람을 나눈 것은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조선은 사회적 영향력의 크기에 따라 직업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을 매겼는데, 책임이 막중한 사(士)의 자리에는 군자(君子)만을 허용했다. 관리로 채용할 사람이 군자인지 알아내기 위해 과거 시험을 치렀다. 조선은 관료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군자로 키우는 것이 목표였고, 당시 지식인들은 그런 조선을 자랑스러워했다. 일본에 주권이 넘어갔을 때, 매천 황현 선생이 유서에 남긴 자결의 이유는 500년간 선비를 키워온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군자는 달리 말하자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게 옳은 일이라면 하는 사람이다. 언론인의 일을 군자가 한다면, 자기네 동네 집값이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정치인의 편을 들어 여론을 왜곡하기보다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기사를 쓰려할 것이다. 군자가 법관이라면, 퇴임 이후에 월급 줄 재벌 기업의 편에서 기소를 결정하고 판결하기보다는 헌법 정신을 기준으로 판결할 것이다. 군자가 학교의 선생님이라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학생들 간의 폭력을 막고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힘들게 시험 봐서 얻은 정규직인데, 어떻게 비정규직의 처우를 나하고 똑같이 할 수가 있느냐”라고 주장하는, 현재 일부 노조에서 보이는 모습은 조선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난 조금도 손해 볼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소인배의 마인드인데, 애석하게도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고등교육에서 좋은 점수를 배운 사람들의 정신세계다. 조선이 교육으로 선비를 키워냈던 것과 많이 다르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소인배를 키워내고 있다. ‘소인배론’을 따로 가르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에 의해 격차가 과한 소득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인배가 된다. 열심히 공부할수록 더욱 그리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소인배를 골라서 중요한 일을 맡기는 나라이고, 조선과 반대되는 원칙으로 운영되는 나라다.)

흔히들 왕국은 공화국보다 미개한 체제라고 알고 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왕 조프리 바라테온의 모습이 그러하다. 나이도 어린 왕이 빈정 상했다고 파티하는 자리에서 사람 죽이는 것을 명령하고, 거기에 아무도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는 모습이 공화국보다 미개한 왕국의 모습이다. 중국 사극을 봐도 청나라의 왕권은 엄청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조선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왕권은 헌법인 경국대전보다 아래에 있었다. 왕이 혼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불법이었고, 왕은 매일 한 시간씩 토론해서 군자의 자질을 유지해야 했다. 평범한 백성은 신문고를 쳐서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고, 왕과 신료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조선의 제도가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탐관오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것이 만연했다고 학교에서 배운 모습과 모순되어서 어리둥절할 수 있다. 성리학이 계급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며, 조선이 반인권적이고 야만적이었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한편은 신문고나 경연이나 경국대전,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모순은 이렇게 이해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원래 제도가 만들어진 의도가 있고, 이를 운영하는 자들이 본래 취지를 무시해가며 법을 어긴 것이라고.

비유하자면 이런 현상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면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목사들이 있을 때, 본래 기독교는 혐오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과 같다. 또는, 재벌이 법관들에게 용돈 줘가면서 법 적용을 피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계급제도가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과 같다.

청나라나 조프리 바라테온의 유럽 중세는 애당초 제도에 조선과 같은 의도가 없었다. 황제나 왕은 제도적으로 법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반면 조선은 정도전의 건국 이후 맹자가 공식 교과서였는데, 맹자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왕조차도 백성을 거스르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조선의 왕자들은 어려서부터 배웠다. 이런 공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을 골라 왕으로 임명하는 것이 조선의 제도였다. 큰아들이라면 무조건 왕을 물려받는 다른 나라의 왕 제도하고도 달랐다.

이렇게 살아오던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조선 지식인들이 느꼈을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점령 세력의 국적이 일본이기는 했는데, 실은 계몽주의 문명이었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였다. 예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며, 오로지 이해득실만이 계기가 되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제국주의 가치관은 조선의 선비들이 용납할 수 없는 정신세계였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돈도 많고,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이 상황을 놓고, 사(士)에 속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정신세계를 지켜나가자는 입장이 있었고, 그 중 적극적인 사람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다른 입장에선 지식인은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일본을 큰 형님 삼아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군자나 예의 따위를 소중히 하는 것은 시대착오였고, 계몽주의와 자본주의야말로 조선을 서구열강처럼 선진국으로 인도할 귀한 가르침이었다.

일본 식민지가 물러간 뒤에는 미군정의 지배 아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고, 그들이 형성한 교육과 제도는 지금도 한국 사회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책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공식적으로 우리는 친일파 선조들의 입장이 옳다고 배운다. (이게 오래된 제도인데, 최근에 와서 더 영향력을 더 미치는 이유는 사회의 변화 때문이다. 1997년 이전까지는 학교나 가정에서 조선의 정신세계를 가르칠 여유가 있었다. 고졸-대졸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데, 금융위기를 계기로 소득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고, 그 이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주입식 교육의 영향을 어릴 때부터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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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2,000년 전에 사람의 몸이 작동하는 원리를 음양오행론이라는 가설을 이용해 이해했고, 그 몸의 작동방식은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게티이미지뱅크

이제 조선의 학문인 한의학이 계몽주의보다 못한 건지 따져보자. 계몽주의를 생각해보면 그때 만들어진 지식 중에 물리학하고 화학이 혁신적이었고, 수학을 다른 학문에 두루 활용하는 마인드가 좋았던 것이지, 모든 지식이 다 예전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면, 확실히 옛날 것이 뛰어나다.

유대인들이 노벨상 많이 받고 돈도 잘 버는 이유가 교육 때문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유대인 교육이란 게 유대교 교육이고, 2,000년이 넘은 라이프스타일이다. 계몽주의 지식이 뛰어나다면 전교 1등 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데, 실상은 오히려 유대교가 뛰어나다. 미국 대학에서 전교 1등 하는 유대인은 유대교 가정교육 덕이지, 계몽주의 학교 교육 덕이 아니다.

의학에 대해 말해보자면,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건강의 문제를 고민해왔고, 한의학은 여러 다양한 선택의 여지 중에 살아남아서 계속 쓰이던 지식이었다. 인과관계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사람 몸이나 현재의 사람 몸이나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한의학은 2,000년 전에 사람의 몸이 작동하는 원리를 음양오행론이라는 가설을 이용해 이해했고, 그 몸의 작동방식은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달라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일등 공신인 물리학이나 수학은 몸에 관한 과학이 아니기에 계몽주의 문명이 의학의 진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열이 40도에 육박하던 아내의 문제는 한의학으로 해결했다. 당시 장모님은 아내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서울의 유명 종합병원을 예약했고, 나 역시도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해서 상한론을 공부했다는 한의사를 수소문해서 다음 날 찾아갔다. 유명 종합병원은 열흘 뒤에 검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열흘 동안 약을 달여 먹고 열이 떨어져서 검사 받기 하루 전날 병원 예약을 취소했다.

보통 사람들이 하듯 열흘 기다려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다리는 동안 악화했을지도 모르고, 입원 후에도 병을 고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다만,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한의학 덕에 심각한 상황을 벗어났는데, 보통은 이러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그런 보통의 선택은 친일파 조상들의 영향이 아니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앞서 내가 중국하고 일본을 언급한 바 있다. 남의 나라는 한의학이 더 인기인데 우리는 이상하다고. 그리고 이전 칼럼에서는 독일하고 미국도 한의학에 보험을 적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다른 나라를 언급하는 설득의 기술은 논리적 사고에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행동을 따라가는’ 본능적인 심리에 소구하려는 시도다. 즉,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한의학이 병을 잘 고친다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다 한의학이 좋다고 하니까 한의학 괜찮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중국하고 일본 이야기 들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독자라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한의학이 왜 병을 잘 고치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의 합리성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칼럼은 합리적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_ 상선약수(baungg@gmail.com)

한의학과 요가에 관심이 많고, 흑백 필름 사진 개인전 한 번과 장편 상업 영화 한 편의 연출 경험이 있다. 생업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잠깐, 그리고 방송사에서 콘텐츠 기획을 오랫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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