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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의 바이오人사이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힘든 이 시기에 웃을 수 있는 건 사람과 사이언스에 대한 진심 때문”
[최수진의 바이오人사이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힘든 이 시기에 웃을 수 있는 건 사람과 사이언스에 대한 진심 때문”
  • 김수진 기자
  • 승인 2022.12.1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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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피와 파킨슨병 이중항체 치료물질에 대해 1조 2,72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
- 34개월이라는 최단 시간에 코스닥 상장 기록 세워
- 제넨텍 등에서 근무, 파멥신 공동창업, 한화케미칼에서의 바이오사업 총괄 등 경력 지녀
- 전 직원에 스톡옵션 제공... “나 혼자 잘해서 이룬 성과 아냐”
- 이중항체 통한 신약 개발이 회사의 미션이자 투자자들과의 약속...투자 계획 없어
-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투자자들은 냉혹... 좋은 사이언스와 진심만 있다면 통할 것

모두들 바이오 업계가 어렵다고 한다. 투자받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IPO 흥행도 옛말이 됐다. 바닥에 떨어진 신뢰로, 보는 눈이 곱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뚝심 있게 이 업계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이오 인사이더’로 통하는 최수진 박사가 바이오에 진심인 사람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어본다. 그들의 시행착오와 실패담, 극복 과정은 오늘도 고군분투 속에 바이오 업계를 이끌어 가는 후배나 동료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K-BIO에 희망을 걸어도 좋다는 시그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주)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바이오타임즈] 2022년 바이오 업계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이중항체 전문기업 에이비엘바이오와 사노피 간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 성사일 것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올해 1월 12일 사노피와 자사의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 치료 이중항체 후보물질 ‘ABL301’에 대해 10억 6,000만 달러(약 1조 2,720억 원) 규모의 공동개발 및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곡소리 날 정도로 돈줄이 마른 올해 바이오 업계에 찾아든 희소식이었고, 거짓말 같은 뉴스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성공담의 주인공인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에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잘 나가게 된 이 회사에 대해 부러움 반, 의심 반의 눈길을 보냈다.

정말 에이비엘바이오의 성공은 갑작스러운 것이고, 행운이 따랐던 것일까.

우리는 이상훈 대표의 성공 너머에 드러나지 않은 아픔이나 실패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딛고 일어서서 극적인 협상에 성공, 이 어려운 시기에 웃을 수 있게 된 비결도 궁금했다.

미국에서 유학과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거쳐 아스트라제네카와 제넨텍 등 다국적 제약사에서 연구개발자로 근무, 그리고 파멥신 공동창업과 한화케미칼에서의 바이오사업 총괄 등을 거쳐 2016년 에이비엘바이오 창업까지 다사다난했던 여정에서 이상훈 대표가 놓지 않았던 것은 ‘바이오와 사람에 대한 진심’이었다.

34개월이라는 최단 시간에 코스닥 상장에 이름을 올린 회사, 한국 바이오 회사 중 최고 수준의 기술수출료 계약을 따낸 회사라는 성과도 결국 이 대표의 진심이 통해서였다.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파스퇴르연구소 2층 본사에서 만난 이상훈 대표에게 그간의 성공 이야기뿐만 아니라 실패담도 들려달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 힘든 과정을 견뎌온 이상훈 대표가 들려준 이야기는 지금 위기에 놓여있는 바이오 업계 사람들에게 자양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상훈 에이엘바이오 대표와 한수진 박사
이상훈 에이엘바이오 대표와 최수진 박사

(최수진) 우선 사노피와의 계약부터 이야기해볼까요. 협상 과정은 순조로웠나요

(이상훈) 올해 1월 12일 기술이전 소식을 발표했으니,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2021년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화상회의로 협상이 시작됐고, 3월까지 동물 실험(원숭이) 데이터를 보고했고, 이후에 실사 등이 숨 가쁘게 이뤄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1년 만에 성과를 냈다고 쉬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2017년부터 이야기가 오고 갔으니 5년간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 결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정말 극적으로 체결이 이뤄졌습니다.

(최수진) 협상 과정 중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상훈) 사노피로부터 MTA(Material Transfer Agreement, 물질이전계약) 계약서를 받았는데, ‘ABL301’이 정말 혈액뇌장벽(Blood-Brain-Barrier, BBB)을 통과하는지 직접 동물 실험을 해보겠다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동물 실험에 관한 프로토콜을 사노피 측에 전달했고, 우리는 예정대로 2021년 12월 6일 사노피와의 계약을 위해 미국 보스턴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동물 실험 결과가 우리와 다르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다시 미팅을 통해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 보았더니, 사노피가 우리가 준 프로토콜대로 실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노피 R&D 책임자인 존 리드와 급하게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마우스로 동물 실험을 다시 한 후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동물 실험은 프랑스에서 하고, 물질 실험은 독일에서 하고, 또 다른 실험은 미국에서 하는 등 그쪽도 우리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모두 반납한 채 매달린 끝에 1월 12일 극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수진) 동물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말 조마조마했겠어요

(이상훈) 이번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느꼈던 것은 1% 실패는 100% 실패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실패하면 그걸로 그냥 끝이죠. 이번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최수진) 사노피에 기술이전한 것이 BBB 셔틀 기반 플랫폼까지 포함인가요. 아니면 파킨슨병 치료제 물질만 해당하는 것인가요

(이상훈) BBB가 적용된 이중항체 물질만 해당합니다. ABL301은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축적되는 병리 단백질 알파시뉴클레인을 타깃하는 항체의 Fc 부분에 BBB 투과율을 높이기 위한 BBB 셔틀분자 IGF-1R scFv를 붙인 형태입니다. 그때 로슈 등 다국적 회사들이 동일한 타깃의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우리 기술은 독성은 낮추고 어그리게이션만 선택해 붙기 때문에 치료 효율을 훨씬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수진) 후보물질 하나인데, 기술 계약 규모가 엄청나네요

(이상훈) 계약금 7,500만 달러 및 단기 기술료(마일스톤) 4,500만 달러로, 국내 전임상 단계의 라이선스아웃 계약 중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엔 더 세게 불렀습니다. 당시 다른 빅파마들과도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BBB 투과율과 선택성이라는 우리의 기술력을 사노피가 가장 높이 평가해 사노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최수진) 사노피에 기술이전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돈 말고 또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이상훈) 사노피는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을 끝까지 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갔습니다. 사노피는 임상에 실패했지만,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어요. 또 사노피 R&D 책임자인 존 리드와 진행한 협상 과정이 매우 나이스했던 것도 선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보통 사노피와 같은 빅파마의 R&D 책임자가 우리와 같은 작은 회사를 직접 상대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최수진) 사노피가 에이비엘바이오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이상훈) 일단은 기존 단독항체 대비 뛰어난 BBB 투과율을 보인 기술력 때문이죠. 사노피가 저희를 처음 알게 된 건 2017년인데, 그때 “에이비엘바오는 이런 기술이 있다”고 알리고 다니던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BBB 통과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저희가 해마다 진보하는 데이터를 갖고 오더래요. 계속 저희를 지켜봤던 것이죠. 결국 사노피에서 2021년 이후에 비즈니스를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한국 회사가 이런 데이터를 갖고 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무엇보다 기술의 배경에 좋은 과학이 있다”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최수진) 대표님 개인적인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전공은 무엇을 했고, 바이오 업계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셨는지요

(이상훈)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UCSF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연구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카이론, 아스트라제네카, 제넨텍, 엑셀레시스 등의 기업에서 연구원을 지내며 신약 개발 경험을 쌓았습니다.

(최수진) 얼핏 보기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이상훈) 웬걸요. 하버드에서 포닥할 때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가 영주권도 없던 때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집에 있는 차도 팔고 매킨토시도 팔고…. 하버드에 있을 때 저에 대한 평가는 “열심히는 하는데, 아주 우수하지는 않다”였던 것 같아요. 그때 매일 들었던 생각은 ‘창피하다. 죽고 싶다’였습니다. 1997년도에 영주권이 나오면서 과감히 하버드를 접고 서부로 가서 결국 연구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최수진) 제넨텍이나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굵직한 기업에 있다가 파멥신을 창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이상훈) 파멥신 유진산 대표와는 스탠퍼드대에서 포닥할 때 알게 됐어요. 그때 만해도 이중항체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던 때였는데, 유진산 박사의 권유로 공동창업의 길로 뛰어들게 된 거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조금 소심해서 ‘이게 될까, 안 될까’ 항상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제 연봉이 고액이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최수진) 2009년 창업이면 국내외 환경이 좋지 않았을 때인데,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습니까

(이상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에 환율이 1,800원 정도 하던 시절이라 국내외 경기가 매우 어려웠던 때입니다. 다행히 유진산 대표의 많은 노력으로 노바티스가 주도한 2008년 GATE I 프로젝트를 통해 노바티스 벤처펀드 투자 대상기업에 선정되면서 노바티스, 오비메드, 녹십자, 동양창투 등으로부터 72억을 투자받아 창업했습니다. 당시로는 꽤 큰 금액이었는데, 그만큼 항체 기술의 가능성과 기술성, 사업성 등을 인정받았습니다.

(최수진) 그렇게 야심 차게 창업했는데, 파멥신과 결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상훈) 포트폴리오나 경영에 대한 유진산 대표와 제 생각이 달라서 제가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4년 6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나올 때 가진 주식을 다 팔아서 가족과 태국 여행 가서 일주일 만에 다 쓰고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했는데,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수진) 그 후 들어간 한화케미칼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죠?

(이상훈) 파멥신을 나온 후 여러 대기업에서 제안이 많이 들어왔었어요. 제대로 신약 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4년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에 입사했는데, 들어간 지 1년 만에 회사가 바이오 사업을 접으면서 제가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3년간 직원들을 내보내고 공장을 팔고 장비를 처분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해서 하는 게 정신적으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침 8시에 그 큰방에 혼자 출근했다가 5시에 퇴근했습니다. 빨리 진행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계획보다 8개월을 앞당겨 정리를 마무리하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최수진) 당시 한화 연구원들과 창업 준비를 하신 거죠?

(이상훈) 네. 연구원들이 실력은 좋은데 그때 그 인력들이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수 있느냐”는 제안에 14명의 연구원(박사 7인, 석사 7인)이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한화의 배려로 대전연구소에서 우리 연구원들이 실험했고, 저는 낮에는 한화로 출근했다가 퇴근 후에는 투자 등을 알아보면서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한화에서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퇴사한 이재천 한화케미칼 바이오 사업본부 상무와 연구원들이 에이비엘바이오를 설립해 먼저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재천 상무가 대표를 맡았었고요. 그때가 2016년 2월 16일이었어요. 직원들이 모두 대전에서 판교로 이사를 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저를 믿고 따라와줘서 참 고마웠어요. 덕분에 지금은 모두 집값도 올랐지요(웃음).
 

판교에 위치한 에이비엘바이오 본사 전경(사진=에이비엘바이오)
판교에 위치한 에이비엘바이오 본사 전경(사진=에이비엘바이오)

(최수진) 에이비엘바이오 설립 시 투자받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이상훈) 사람 일이라는 게 한번 인연을 맺어 놓으면 언제 어디서건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파멥신 설립 때 알게 된 노바티스 벤처펀드 담당자가 한국투자 쪽으로 소속을 바꾸면서 그분을 통해 기회가 닿아 투자 네트워크를 소개받았습니다. 2016년 3월 한국투자파트너스와 DSC인베스트먼트로부터 90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고, 1년 후에 한국투자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NS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200억 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이중항체가 핫하지만, 5~6년 전 만 해도 이중항체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최초로 이중항체를 연구한 사람으로 이중항체야말로 기존 항암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확신하고, 기술력으로 입증하겠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최수진) 회사 설립 34개월 만에 코스닥 상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비결이 있었다면요?

(이상훈) 무엇보다 시장에서 저희가 가진 이중항체 기술력과 시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국 트리거 테라퓨틱스에 항암 항체 신약 물질 5종을 5억 5,000만 달러에 라이선스 아웃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테고요. 에이비엘바이오는 플랫폼 기술을 갖고 있어서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파이프라인 확장이 용이하다는 게 특징입니다. 퇴행성 뇌 질환 신약으로 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와 이를 활용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으며, 면역항암제 분야에서는 그랩바디-T와 그랩바디-I를 기반으로 한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입니다.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 기관 투자자들한테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수진) 코스닥 상장 시 오해도 받았던 걸로 들었습니다

(이상훈) 파멥신 나올 때 욕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파멥신 기술을 갖고 나온 것 아니냐, 이중항체 갖고 나온 것 아니냐면서요. 코스닥 상장 때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나왔고요. 특히 우리가 라이선스 아웃한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나중에 계약금이 현금으로 들어오면서 이 소문은 잠잠해졌습니다만, 이러한 오해와 소문으로 처음에는 주식도 출렁거렸습니다. 개인 청약에서는 120억 정도 미달됐었고요. 미달 물량은 모두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인수했고, 상장 3일 만에 상한가를 기록해 한투증권이 바로 팔고 나가면서 3배가량 수익을 남겼습니다. 이때 느꼈던 건 “무조건 실력으로 보여주자. 잘 되면 오해는 사그라들 것이다”라는 생각이었고, 결국 시장에서 되는 걸 보여드렸기 때문에 이제는 오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최수진) 미국에 있을 때 힘들었다고 했는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근무했던 경험이 도움도 됐죠?

(이상훈) 돌이켜보면 그 당시 우울하고 인생이 뭔가 안 풀린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그 모든 경험이 에이비엘바이오의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잘 됐을 때만 해당하는 말입니다만, 결국 나쁜 경험은 없는 것이죠. 제넨텍 등 매우 수준 높은 환경에서 약물 개발의 기본을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신약 개발에 있어서 사이언스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힘들어도 좋은 사이언스만 있다면 글로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사노피와의 계약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수진)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상훈)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점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다는 것, 그리고 조직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초기 멤버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고, 회사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그들이 다 이룬 업적입니다. 이제 다들 부자가 됐고, 여기 그만둬도 어디 가서 연구소나 회사 차릴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하나같이 안 나가는 것 보면 내가 좋은가 봐요(웃음).

(최수진) 지금도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하고 있나요?

(이상훈) 네. 물론입니다.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건 저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스톡옵션 제공이 회사 회계상으로는 적자에요. 그래도 만일 우리 회사 주가가 3~4만 원만 되면 직원들이 집을 사는 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최수진) 특별히 원하는 인재상이 있으신가요?

(이상훈) 최근에는 포항공대 박사 3명이 새로 들어왔어요. 현재 직원이 102명까지 늘었습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다른 회사와 달리 매우 오픈되어 있어요. 조직도 굉장히 심플하고요. 저는 웬만해서는 직원에게 화내거나 스트레스를 안 주려고 해요. 그 대신 아주 일을 열심히 하는 분위기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분위기가 정착됐습니다. 이런 조직 문화에 융화해서 열심히만 한다면 큰 문제 없이 오래 다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단 멤버와 2년 차 직원까지 합쳐 현재 95%가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

(최수진)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표님의 성공비결은 그간의 노력이 뒷받침된 건 맞는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훌륭한 인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상훈) 제가 최근에 선배님 소개로 서울대 약대에 강의하러 갔었습니다. 서울대 약대에 올 정도면 다들 1등만 했던 학생들일 텐데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반장도 한번 못 해봤고, 리더십도 없었어요. 대학도 1지망이 안 돼서 2지망으로 사범대 생물과에 갔었고요. 제 와이프도 저 때문에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 나이 50이 넘어 빛을 보게 됐는데,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잘못 된 건 아니구나 싶습니다. 누구보다 솔선수범해서 일을 열심히 하면 주위에 사람이 몰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해주면, 그 사람들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믿는 편입니다.

이상훈 대표와 연구원들(사진=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와 연구원들(사진=에이비엘바이오)

(최수진) 투자해달라고 하는 요청은 없나요

(이상훈)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절대 투자할 생각이 없습니다. 회사의 미션이 이중항체를 통한 신약 개발입니다. 투자자들과도 그렇게 약속했고요. 신약 개발을 통한 회사가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 현금 보유액이 1,500억 원 정도 되는데, 모두 연구비와 회사 운영에 쓸 예정입니다.

(최수진) 현재 진행 중인 기술이전 협상도 있습니까

(이상훈) 진행 중인 협상은 있는데, 요즘 워낙 글로벌 마켓도 힘들고 하니까 끝까지 해보고, 결정되면 발표하려고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내년도 초반에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수진) ABL301의 ‘부분 임상 보류’(Partial Clinical Hold)’ 결정으로 우려하는 시선이 많은데, 미국 임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상훈) 시장과 업계에서의 분석도 그렇고 아무래도 최근 아밀로이드 베타(Aβ) 타깃 단독항체 치매 치료제 임상에서 사망자들이 나오면서 안전성을 위해 최대 용량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해진 것 같습니다. 동물 실험(원숭이)에서 200mg/kg을 투여하면 사람에는 10분의 1만 가능해서 최대 20mg/kg 이하의 용량 범위 내 임상시험을 시작해야 합니다. 20이라는 수치는 효과를 나타내기에 굉장히 약하긴 하지만, FDA 요청에 따라 우선 저용량 임상은 연말 또는 내년 초에 첫 환자 투약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임상시험을 위한 약도 이미 중국 우시(WuXi)를 통해 준비했고, 미국으로 보내기 위한 허가도 받은 상태입니다. 또한, ABL301 고용량에 대한 비임상 독성시험(GLP tox study)도 추가 진행해 추가 데이터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최수진) 이중항체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상훈) 제넨텍이나 리제네론과 같은 빅파마들은 벌써 이중항체+이중항체 콤비로 해서 이중항체를 병용으로 개발 중입니다. 이제 이중항체의 생산성에 관한 이슈는 없어졌고, 기술도 어느 정도 올라와 있다고 봅니다. 결국 문제는 타깃인데, 초기 개발부터 이런 부분을 잘 고려해서 임상 전략도 계획해야 할 것 같습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3등 안에 들 수 있는 타깃으로 해서 베스트 인 클래스로 가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 의견입니다.

(최수진) 대표님이 우리나라에도 제넨텍 같은 회사 좀 만들어주세요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도 언젠가는 임상을 종료하고, 라이선스 아웃된 물질 중에 허가를 획득해 로열티를 받는다면 무조건 그때부터는 성장세를 보이리라 확신합니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는 빅파마와 공동개발이나 콜라보레이션하고, 임상3상까지 50대 50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단독으로도 가능하고요.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른 국내 기업들에 롤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최수진) 요즘 경제가 정말 어려운 시기인데, 바이오 업계에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상훈) 정말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적지 않은 회사가 임상을 중단해야 하고,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투자자는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시장에서는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기술력만 투자받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신약 개발은 가능성 하나만 보고 오랜 시간 동안 인력과 시간, 돈이 투입되는 과정이므로, 매 순간 진심을 다해 노력한다면 이 어려운 시기도 잘 넘기시리라 믿습니다.
 

■ 최수진 박사는? ■

국내 최초로 코엔자임 Q10을 개발한 인물로, 대웅제약 연구소장을 거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PD,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신산업MD, OCI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를 맡고 있다. 30년 가까이 제약업계는 물론 정부 기관에서 활약하며 신약 개발을 비롯해 바이오 기술개발 관련 전략 수립과 투자관리, 정책 수립 등을 두루 섭렵해온 그가 바이오타임즈의 [최수진의 바이오人사이드]에서 진정성 있는 바이오人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바이오타임즈=김수진 기자] sjkimcap@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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