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의 10% 미만을 수출한 개발도상국이 대상
백신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하자는 주장은 지속 제기돼
지재권 면제가 제약사의 추가적인 개발비를 투입할 유인을 약화시킬 수도 있어
[바이오타임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 논의가 1년 반 만에 잠정 합의안에 도달했다.
18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미국·유럽연합(EU)·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 4개국은 1년 반 만에 코로나19 백신의 지재권 면제와 관련된 핵심 사항에 잠정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제 대상에는 특허받은 코로나19 백신 이외에 백신 제조에 필요한 성분 및 제조공정이 포함되며, 지식재산권이 면제될 수 있는 국가는 2021년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의 10% 미만을 수출한 개발도상국이 해당한다. 중국산 백신은 지재권 면제 대상에서 제외될 공산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잠정 합의안을 살펴보면 ▲대상 국가는 코로나 백신의 생산 또는 공급에 필요한 여러 특허사용을 허가할 수 있고, 허가 시 해당 특허가 무엇인지 결정함에 있어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대상 국가는 사용자가 특허권자에게 승인 권한을 획득하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되며, ▲대상 국가는 자국의 국내시장 공급 이외에도 다른 면제 대상 국가에 백신을 수출할 수 있고, 국제적 또는 지역적인 백신 공급 이니셔티브에도 공급할 수 있으며, ▲대상 국가는 자국에 수입된 코로나19 백신의 재수출 및 합의와 일치하지 않는 코로나19 백신의 수입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대상 국가는 이러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인도적이고 비영리 목적임을 고려하여 적정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번 합의문이 정식으로 채택되려면 세계무역기구(WTO)의 164개 회원국 모두 동의해야 하며, 합의문에서 제시한 3~5년의 면제 기간을 정확하게 몇 년으로 할지도 합의해야 한다.
◇백신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하자는 주장은 지속 제기돼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백신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면제(혹은 유예)하자는 주장은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미국은 지난해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를 선언했지만, 독일과 스위스, 영국 등은 반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지난해 10월 WTO에 코로나19 예방·격리·치료를 위해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트립스)’상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일시적으로 유예해야 한다고 공동 제안했다.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해법은 지재권을 유예해 백신 생산을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백신의 지재권 면제와 관련된 주요 4개국의 합의문이 발표되자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주요 글로벌 제약사는 기업 차원의 논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들 기업이 속해있는 국제제약제조업협회(IFPMA)는 이번 합의에 대해 “위기 대처 능력을 약화할 수 있는 조치”라며 비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미국바이오협회(BIO) 등 바이오 및 제약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들도 특허권 약화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재권 면제가 제약사의 추가적인 개발비를 투입할 유인을 약화시킬 수도 있어
제약회사가 지닌 잠재력의 핵심은 신약 특허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 신약 개발의 기간은 약 15년이며, DiMasi(2016) 등에 따르면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약 26억 달러가 소요된다. 따라서 제약회사의 신약 특허는 성공확률은 낮지만, 성공하면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에 해당한다.
이상훈 선명법무법인 변호사는 지난해 8월 25일 본지에 기고한 칼럼 ‘제약회사의 신약 특허가 지니는 가치와 특허 면제’에서 의약품 특허 유예(면제)에 대한 요건을 설명했다.
칼럼에 따르면 의약품 특허 유예(면제)에 대해서 ‘공업소유권보호를 위한 파리협약(Paris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Industrial Property, 1884년 발효)’은 특허권자의 권리남용에 대한 조치로 강제실시권을 허여할 수 있고, 강제실시권 허여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특허권의 몰수 또는 취소까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WTO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 제27조 제2항(공중보건상 필요 시 예외적인 의약품 특허 제한), 제31조(강제실시), 제31조 bis 등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법 제 106조 제1항에서 특허발명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시에 있어서 국방상 필요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을 경우, 정부는 특허권을 수용하거나 직접 특허발명을 실시할 수 있고, 또는 정부 외의 자가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허 수용 및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 또는 Unvoluntary license)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실시권이 발동되더라도 ▲강제실시권이 시행된 나라에 대해 해당 제약회사가 의약품 공급을 중단하거나 ▲ 의약품 산업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 ▲ 정치적 문제 발생의 위험으로 인하여 강제실시권 승인이 쉽지 않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2001년 에이즈 치료제 Viracept(Nelfinavir), Efavirenz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려 했으나 약가 인하로 철회됐고, 2007년 애보트사의 에이즈 치료제 Kaletra도 약가 인하로 중재됐으며,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경우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 그 예다.
이상훈 변호사는 “특허권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권이지만 공공의 이익과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당장에는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가 급증하는 코로나 전파 속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사익과 공익의 선택에서 공익이 우선될 수 있겠으나, 그 효과에 대해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계속 출현하는 코로나 변이에 대응하여 신약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재권 면제가 추가적인 개발비를 투입할 유인을 약화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사익과 공익의 접점을 찾기 위해 각 이익집단 간의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오타임즈=김수진 기자] sjkimcap@bi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