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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늙는 기술] 문명의 차이
[더디게 늙는 기술] 문명의 차이
  • 상선약수(上善若水)
  • 승인 2021.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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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상선약수는 의사도 아니고 관련된 학위도 없습니다. 다음의 글은 한의학과 카이로프랙틱, 요가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으나, 문헌적 근거는 없습니다.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나 늦추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상식에 기반한 가설의 세계를 펼쳐나가겠습니다. 그럴싸하다 싶으시면 따라할 수는 있겠으나, 본 칼럼이 그 결과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오타임즈] 마징가 제트하고 태권브이 중에 누가 센지, 또는 슈퍼맨하고 배트맨하고 누가 더 센지 궁금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궁금할 수 있는 것이 한의학과 서양의학 중에 어느 것이 병을 더 잘 고칠까 라는 물음이다.

나는 당연히 한의학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한의학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된 지식은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는 못한다. 오래되었다면 시행착오도 더 많이 거쳤을 것이고, 임상의 경험도 더 누적되었을 텐데 왜 흔쾌하게 오래된 것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문명도 그중의 하나다. 오늘은 문명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지금도 교과서로 쓰이는 황제내경은 역사가 2,000년 된 책이다. 한의학은 음양오행론을 근거로 하는데, 이는 음양론과 오행론이 통합된 것이라고 한다. 음양론과 오행론은 제자백가 시대에 정리된 지식이고, 제자백가는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의 일이다. 제자백가에는 우리가 친숙한 공자, 맹자와 진시황이 천하 통일할 때 도움받은 법가, 제도 측면에서는 비주류이나 지혜가 담긴 베스트셀러인 노자와 장자, 그리고 우리가 자주 인용하지 않는 한비자나 명가 등 다양한 사상들이 여기에 속한다.

서양의학이 속한 문명인 계몽주의는 산업혁명 시기에 만들어졌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저술한 1687년을 시작으로 잡아도 계몽주의의 역사는 400년을 넘지 못한다. 미분과 적분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놀라움 때문에 동시대 지식인들은 그 단순함과 우아함을 세상 모든 이치에서 발견하고 싶은 바람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렇게 과감하게 용감하게,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들은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만들어갔다.

물리학을 흉내 낸 대표적인 학문이 경제학이다. 사회학과 교육학 등 지금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전공과목들이 대개 이때 만들어졌다. 계몽주의라는 이름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덜 아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좀 주제넘은 뜻이 들어있는데, 그 계기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세상 이치는 모두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증된 바와 같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5단계를 거쳐 역사가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계몽주의 지식의 전형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는 원시 공산사회–고대 노예사회–중세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 이후에 공산주의로 변한 케이스는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해도 자본주의 이전의 조선은 봉건주의가 아니라 잘 짜인 중앙집권 사회였다. 같은 시대에 일본은 봉건 사회였지만, 조선은 달랐다. 게다가 헌법인 경국대전이 왕권보다도 우위에 있는, 입헌군주제에 가까웠다. 인기 좋은 사람이 선출되는 지금의 대통령제와 비교해서, 어려서부터 통치 수업을 받은 사람이 왕이 되는 조선의 제도가 지금보다 덜 발달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마르크스의 가설에는 이런 반증이 있어서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다만, 무자비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사람 대접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에게 감정이입하고,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고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존경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이론은 그가 생각하던 물리학과 달리, 역사 속에서는 단순한 법칙을 발견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들어있는 또 다른 판타지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인데, 이런 믿음은 마르크스가 별나서 그렇게 믿은 게 아니라 당시 유럽 지식인들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는 믿음은 역사적으로 볼 때 특이한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은 세상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고 했고, 공자님이 요순시대가 좋았다고 하는 말도 과거에 더 좋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노는 모습 하나만 봐도, 30년 전보다 좋아졌다고 하기 힘들다.
 

마르크스 게티이미지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들어있는 또 다른 판타지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지식인들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시에 출간된 공상과학 소설에서 미래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그려지는 이유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해저 2만 리>가 그렇고, <우주 소년 아톰>은 이런 분위기를 물려받은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나 <은하철도 999>같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물은 197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경험한 상황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 지식인들의 삶은 점점 좋아졌다. 마차 대신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목격했고, 비행기가 개발되는 것을 보고, 경제적으로 점점 윤택해져 갔으니까. 그런데, 그것은 지식인들 주변에서만 벌어진 일이었다. 공장노동자들은 농노로 지내던 것보다 좋아졌다고 말하기 애매했고, 유럽 지식인들이 누린 경제적인 풍요는 인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민 지배를 받고 노예로 끌려온 덕에 가능한 것이었다. 공장노동자와 식민지 등을 종합해서 따져보자면 세상은 안 좋아진 것이 맞는데, 교통과 통신이 지금과 다른 당시 유럽의 지식인 입장에서는 식민지나 노예들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내경에 서양의학보다 많은 지식이 집적되는 것이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지간한 동물학자들이 초식동물의 행동양식에 대해 아는 것보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육식동물이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설득력이 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고, 그 지식의 양은 우습게 볼 수준을 넘어선다. 하물며, 문자가 있어서 지식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가능한 춘추전국시대를 지나왔다면, 황제내경에 그런 지식이 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임상으로 검증할 때 별다른 반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황제내경은 2,000년 전 누군가의 기발한 발명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지식을 종합한 저술일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갈수록 안 좋아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말하는 책이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다. <엔트로피> 이후 제러미 리프킨의 책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통념이 틀렸고, 그래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유러피안 드림> <공감의 시대> 등도 한결같이 그런 생각을 전하고 있다. 같은 저자의 <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사회>는 대량 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가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임을 말하는 책이다.

경제학과 교육학, 역사학 등의 학문은 일찌감치 한계가 드러났고, 양자역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은 뒤로는 뉴턴 물리학도 특정 상황에만 적용되는 지식이라는 이해가 널리 퍼진 지금, 굳이 서양의학에 대한 믿음만을 고집하는 자세가 적절한 것인지 따져보는 일은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믿음으로 보자면 나중에 나온 지식인 서양의학이 더 좋을 것 같지만, 계몽주의가 너무 단순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옛날 것이 더 좋을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의료제도는 다양한 의학을 건강보험의 범위 안에 넣는다고 한다. 거기에는 한의학도 들어가고, 카이로프랙틱도 포함되고, 기타 온갖 종류의 의학이 들어있다고 한다. 독일의 제도를 보면 독일 지식인들은 계몽주의가 한계가 있는 문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만 이런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카이로프랙틱이 보험 적용이 된다고 한다. 의학이 뭐가 되었든 병만 고치면 되는 일이니까, 굳이 문명이 어쩌고저쩌고 따질 것도 없이, 이런 제도 운용은 상식적으로 무리가 없다.

우리말로 번역된 미국이나 유럽 책 중에는 노자나 손자병법 등을 인용하면서 챕터가 시작되는 경우가 꽤 빈번하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제자백가를 인용하는 것은 계몽주의가 지식의 한계를 벗어났음을 인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참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논어나 장자를 인용하는 지식인을 보기 힘들고, 애덤 스미스나 토머스 홉스 같은 계몽주의 지식을 인용하는 케이스가 오히려 흔하다. 미국·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별나게 계몽주의를 사랑하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왜 유독 서양의학이라는 특정 의료지식만을 고집할까. 제도에 한계가 있어서, 특정 직업군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했다고 말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특정 정치인만 서양의학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남다른 역사적 경험, 즉 식민 지배로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가치 중립적인 지식인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식민 지배의 역사적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를 벗어나는 느낌이 있으나, 실제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고, 지식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계몽주의는 사람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한다. 그런데, 실제 사람 중에는 합리적인 사람이 드물고, 합리적인 사람들마저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삶에서 잠깐뿐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적분에 능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주식시장에서도 버블이 생기고 저평가가 일상다반사다. 하물며 제도를 구성하는 지식이 모두 합리적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과한 것 아닐까.

맹자에 대장부(大丈夫)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담긴 단어다. 맹자가 못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리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맹자는 시대를 한참 앞서간 동시대의 천재 중 한 명이다. 맹자가 대장부라는 개념을 쓰는 모습을 보고 생각해야 할 것은, 맹자조차도 동시대인이 공유하는 정신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통념을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맹자가 남녀의 능력 차이를 당연하다고 보는 불합리함이, 계몽주의 지식이 제자백가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불합리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렇기에, 식민 지배가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잠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음번 칼럼에서는 식민 지배가 형성한 통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_ 상선약수(baungg@gmail.com)

한의학과 요가에 관심이 많고, 흑백 필름 사진 개인전 한 번과 장편 상업 영화 한 편의 연출 경험이 있다. 생업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잠깐, 그리고 방송사에서 콘텐츠 기획을 오랫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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