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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늙는 기술] 가설을 우습게 보지마라
[더디게 늙는 기술] 가설을 우습게 보지마라
  • 상선약수(上善若水)
  • 승인 2021.12.13 10: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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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타임즈] (들어가는 말) 상선약수는 의사도 아니고 관련된 학위도 없습니다. 다음의 글은 한의학과 카이로프랙틱, 요가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으나, 문헌적 근거는 없습니다.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나 늦추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상식에 기반한 가설의 세계를 펼쳐나가겠습니다. 그럴싸하다 싶으시면 따라 할 수는 있겠으나, 본 칼럼이 그 결과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 써나갈 글은 가설이다. 내 몸에서 벌어진 일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일을 관찰해 얻은 지식을 써나갈 텐데, 실험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즉, 가설이다. 가설이란, 이러저러한 일은 이러저러한 원인 때문이라고, 인과관계를 정의하는 일이다.

이 글이 가설이라는 점을 들어, 이것이 허무맹랑하다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좀 섣부를 수 있다. 본래 학문이라 자리 잡은 지식은 공통으로 가설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물리학의 공식 F=ma를 예를 들어보자.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는 말을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식은 검증된 것이냐 하면 좀 애매하다. 이런 실험을 생각해보자. m을 1mg에서 10톤까지, a를 1m/s2에서 1,000,0001m/s2까지 준비해 놓고, 그 중에 100가지 경우를 조합해 실험했을 때 100번의 실험 결과에서 m과 a를 곱한 값이 모두 F로 나왔다고 하자. 이 결론을 근거로 F=ma가 맞는 이론이라 주장하기에는 뭔가 찜찜함이 남는 거다. 왜냐하면, 실험하지 않은 어떤 경우에 이게 안 맞을지도 모르니까.

이때 쓸모 있는 것이 ‘반증’이라는 개념이다. 어떤 m 값하고 어떤 a 값으로 계산했을 때, F가 두 값의 곱이 아닌 경우가 단 한 건이라도 발견된다면, 즉 반증이 한 건이라도 발견된다면 F=ma라는 가설은 기각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물리학에서는 그런 경우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F=ma라는 가설은 기각하지 않고 이론으로 쓴다. 즉, 입증되어서 채택된 것이 아니라, 반증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F=ma라는 가설은 직관적으로 타당하다. 유리창을 깨고자 할 때, 도토리를 던지는 것보다는 쇠 구슬을 던지는 편이, 즉 m 값이 클 때, 잘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왕에 쇠 구슬을 던질 것이라면 세게 던지는 편이 더 잘 깨질 것 같다. 즉, a 값이 커야 F값이 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도토리나 쇠 구슬로 유리창을 깨는 이야기는 약간 동화 같은 느낌도 있지만, 가설 F=ma에는 그런 로맨틱함이 없다. 건조하고 단순한 등식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비정해 보이는 단순함 덕분에 현실 속의 복잡함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가설이다. F=ma뿐만 아니라, 다른 뉴턴 물리학 가설들이 직관적으로 타당하다 보니 이 가설을 현실이라 믿기 쉽다. 그런데, 가설은 현실과 다른 거다. 가설은 다만 현실의 한 부분만을 설명할 뿐이다.

쇠 구슬로 유리창 깨는 실험을 다른 조건에서 할 수 있다. 광속에 근접한 시공간에서 할 수도 있고, 또는 쇠 구슬의 크기가 중성자 한 알 크기일 수도 있다. 중성자를 던져서 우라늄 원자를 쪼개야 하는 상황에서도 저 가설이 타당할 것인가. 광속의 90%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 안에서도 쇠 구슬을 던져서 유리창을 깰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세계는 우리 직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도 우리 직관과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직관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서 얻은 경험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 스케일의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고, 광속에 근접한 시공간도 경험할 일이 없었다. 양자역학의 규모에서 1만 배 씩 스케일을 계속 키우다 보면, 양자역학도 아니고 뉴턴 물리학도 아닌 다른 물리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물리학은 우리가 쓸 일이 없다 보니, 그걸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일 뿐. 어쨌거나 뉴턴 물리학도 특정한 상황에서만 의미가 있는 가설일 뿐이다.

화학도 특정한 상황에서 들어맞는 가설 중 하나이고, 게임이론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생물학도 이런 가설 중 하나다. 그리고, 물리학을 흉내 내서 만든 경제학도 그런 가설 중에 하나다. 사회학도 그렇고, 교육학도 그렇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이들이 가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가설들은 그래서 쓸모가 있다. 가설의 세계가 워낙 단순하다 보니, 가설의 세계 속에서 뭔가를 시도하면서 예측을 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물리학을 예로 들며 가설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한 이유는 한의학의 속성을 말하기 위함이다. 가설이라는 점, 단순해서 예측하기 쉽고, 건강이라는 한정된 상황에 대해서만 쓸모가 있다는 점이 한의학과 물리학이 닮은 부분이다. 한의학의 가설을 처음 들을 때 생기는 거부감은, 한의학이 대놓고 이것은 가설이라는 것을 밝히기 때문이다. 오장을 설명할 때 비장은 흙과 닮았고, 심장은 불과 닮았고, 이 내장들은 열이 나기도 하고 냉해지기도 하는데, 얼른 드는 생각은 허황되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처음 배울 때 이것이 가설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한 이론과 현실을 구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중·고등 학생들은 이게 가설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 한 채, 무작정 공식을 외우면서 과학을 배운다. 학문을 이렇게 접해온 사람들이 한의학을 대할 때 이게 가설이라는 것을 먼저 들으면 뭔가 거북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한의학을 전공한 대부분 사람도 자기들의 생업을 근거로 한 지식이 가설이라는 것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동의보감에 신형장부도라는 그림이 있다. 이것은 해부학책이 아니다. 어차피 한의학은 상상 세계 속에 사람 몸의 모형을 놓고, 거기서 상황을 파악한 뒤에 실제 몸에 쓸 해결책을 내는 것이기에 실제 몸이 어떤 모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리학의 가설 세계 속에 도토리도, 유리창도 없는 것처럼, 한의학의 가설 세계 속에는 실체 몸의 모양을 담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 그림은 실용적으로 쓸모가 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데 쓸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이라는 지식은 가설의 형태로 구성된 것인데, 서양의학은 경우가 다르다(한의학과 구분하기 위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의술을 앞으로는 ‘서양의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래서 두 지식의 능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의학을 구성하는 가설을 상세히 언급하려면 먼저 문명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황제내경을 비롯한 한의학 서적들이 쓰인 문명은 중국 문명, 또는 황하문명이고, 서양의학은 계몽주의 문명인데, 둘은 차이가 크게 난다. 그리고, 각 문명에 속한 학문은 그 가설들이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비유하자면, 개별 학문은 애플리케이션 같고, 학문이 속한 문명은 OS 같다. 안드로이드, IOS, 윈도가 다르듯이 문명별로 색깔이 분명하다. 문명의 특색을 알면 개별 학문의 장점과 한계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다음번에는 원래 문명을 이야기할 계획이었는데, 최근 코로나19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쏠리고 있어서 우선 코로나19와 관련된 한의학 이론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문명과 한의학의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이기는 패러다임>, 조지 소로스. 가설과 반증에 대한 이야기가 간결하게 정리되어있다. 1997년 우리나라 금융위기를 이용해 큰돈을 벌기도 했던 조지 소로스는 악명 높은 금융 자본가인데 , 동시에 칼포퍼를 물려받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_ 상선약수(baungg@gmail.com)

한의학과 요가에 관심이 많고, 흑백 필름 사진 개인전 한 번과 장편 상업 영화 한 편의 연출 경험이 있다. 생업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잠깐, 그리고 방송사에서 콘텐츠 기획을 오랫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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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2021-12-13 12:30:32
근거없는 가설이라 하나, 상당히 논리적인 글이라 관심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