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대형 외국 제약사 M&A 추진…바이오 CDMO 분야에서 활발한 행보
[바이오타임즈] 제약·바이오 업계에 인수합병(M&A)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신성장 동력 확보 수단으로 M&A를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 추진 및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 만료, 생물 보안법 발의 등의 이슈로 앞으로도 지속해 M&A 거래가 늘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 및 IRA 시행에 따라 M&A 시장 활성화 전망
지난 5년간 글로벌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M&A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글로벌 제약·바이오 M&A 거래 규모는 9,632억 달러(약 1,328조 원)에 달했다. 이 중 57.7%는 BMS(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MSD(머크), J&J(존슨앤드존슨), 화이자, 애브비, 다케다 등 글로벌 10대 빅파마에 의해 성사된 거래다.
지난해 화이자가 시젠을 430억 달러(약 56조 원)에 인수하는 등 빅파마가 M&A 참여를 늘리면서 거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올해 빅파마의 M&A는 더욱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빅파마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중 선불로 5,000만 달러(약 689억 6,00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는 24건으로, 전년 동기(18건) 대비 33% 넘게 늘었다.
실제로 J&J가 ADC 개발사 엠브렉스바이오파마를 20억 달러(약 2조 6,350억 원)에 인수했고, 머크는 이중항체 개발 기업 하푼테라퓨틱스를 6억 8,000만 달러(약 9,000억 원)에 합병했다. 노바티스도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칼립소바이오테크를 4억 2,500만 달러(약 5,600억 원)에 사들이는 등 연초부터 다국적 제약사의 M&A 성사 발표가 잇따랐다.
글로벌 빅파마의 이 같은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빅파마는 특허 만료가 되면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다. 미국 컨설팅업체 ZS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만료되는 의약품 특허는 190여 건으로, 그 중 빅파마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70여 건에 이른다.
매출 점유율이 높았던 의약품에 대한 독점권 상실은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보유한 빅파마는 특허 만료 전 매출 감소에 대한 대안으로 차세대 신약 개발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거나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크고 작은 M&A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앞으로도 특허 만료를 앞둔 블록버스터급 오리지널 의약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빅파마의 새로운 블록버스터급 파이프라인의 확보를 위한 M&A 움직임은 더욱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 추진이 M&A를 더욱 부추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시행에 따라 미국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이 가입한 ‘메디케어’ 등재 10개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를 추진키로 했다.
IRA는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한 미국 법안이다. 전문의약품 보험 지출 상위 의약품 중 ▲9년 이상(FDA 허가 이후) 제네릭이 출시되지 않은 케미컬 의약품 ▲13년 이상 바이오 시밀러가 출시되지 않은 바이오 의약품에 약가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 보건복지부(HHS)에 따르면 10개 의약품은 2월 협상 가격 공지, 올해 말 최종 인하 약가 공시, 2026년 1월 최종적으로 인하된 약가가 발효된다. 이후 매년 10여 개 약품이 추가될 전망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는 “특허 만료에 따라 해당 의약품을 보유한 제약사는 새로운 수익 창출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상황인데, 여기에 IRA까지 더해지면서 신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매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업화 단계의 기업을 물색하고 나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 대형 외국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기업 간 M&A 늘어…바이오 CDMO 성장성과 생물 보안법 영향
국내 M&A 시장 역시 활성화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국내 M&A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약 138조 1,100억 원)를 넘기며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바이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은 대기업의 대대적인 투자가 주요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들 기업은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인다. 바이오 CDMO가 성장성이 기대되는 시장인 데다 공동개발로 리스크를 분담하고 상대적으로 매출 성과까지 쉽게 낼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CDMO 사업은 누가 빨리 선점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특히 바이오 CDMO 분야는 막 성장하고 있는 시장으로 미래 먹거리 성과를 기대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지속적인 M&A가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내 유망 바이오텍 외에도 의약품 선진국인 유럽, 미국 등의 제약사와의 M&A 거래 성사가 수천억 원대에 이뤄지는 실정으로, 앞으로 이 같은 추세는 한동안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이 자금을 투입해 CDMO 수요에 대응하려는 또 다른 이유로 미국의 ‘생물 보안법’ 발의를 들 수 있다. 생물 보안법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중국 대표 CDMO인 우시바이오로직스 대신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생물 보안법은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내 거래 제한을 주요 골자로 한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주도로 새로운 바이오산업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현재 미국 상원과 하원 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의결과 대통령 서명만 앞두고 있다.
법안이 실행되면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등 관련 기업은 2032년 1월 이후 미국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낮은 가격으로 세계 CDMO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8년이라는 유예기간이 남았지만 생물 보안법발 글로벌 바이오산업 지각변동은 더 빨리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주요 바이오기업은 M&A를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6월 독일의 바이오 의약품 CDMO 업체인 IDT 바이오로지카를 총 3,39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로써 SK바이오사이언스의 매출 3,700억 원에 IDT 바이오로지카의 매출 4,100억 원을 더해 7,000억 원대의 매출 창출이 가능해졌다.
회사 측에 따르면 IDT 바이오로지카는 총 6,560억 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지닌 글로벌 기업이다. 암젠,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등을 생산한 기업으로, 공정·분석법 개발과 함께 임상부터 상업 단계까지 백신·바이오 전 영역의 원액과 완제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1921년 옛 동독 데사우의 ‘안할트 세균학 연구소’가 전신으로, 독일과 미국에 직원 1,600명을 두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의 시러큐스 공장을 1억 6,000만 달러(약 2,080억 원)를 들여 인수했다. 시러큐스 공장의 부지 일부에 항체-약물 중합체(ADC) 생산 시설을 마련해 신규 모달리티에 대한 기업 수요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CJ제일제당은 2021년 11월 네덜란드 바이오 CDMO 기업 바타비아바이오의 지분 75.8%를 2,677억 원에 인수했다.
[바이오타임즈=김가람 기자] news@bi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