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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억이라도 새로운 뉴런에 저장”, 새로운 치매 치료법 가능성 제기
“같은 기억이라도 새로운 뉴런에 저장”, 새로운 치매 치료법 가능성 제기
  • 김수진 기자
  • 승인 2021.11.04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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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한진희 교수 연구팀, 뉴런 교체에 의한 기억저장 규명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때 뉴런들이 다이내믹하게 새로 교체됨을 처음 규명
기억 뉴런을 표적으로 퇴행성 뇌 질환, 치매 치료법을 열어줄 새로운 패러다임 기대
게티이미지뱅크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은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때 뇌에서 오히려 뉴런들이 다이내믹하게 새로 교체됨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뉴런 교체는 기억 업데이트의 중요한 기작으로 생각되며 노화, 퇴행성 뇌 질환에서 기억상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오타임즈] 기억이란 무엇이고 어떠한 원리에 의해 작용할까.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면 그 기억은 같은 뇌의 위치에 저장될까.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일상적인 기억은 대부분 반복적인 학습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몇몇 연구에서는 같은 학습의 반복을 통해 형성된 기억은 같은 세포 앙상블을 통해 계속 저장되고 강화된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반대로 또 다른 연구들은 기억 엔그램 세포들이 일정하지 않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속해서 변한다는 것을 보였다.

아무리 경험이 반복되더라도 각각의 이벤트는 조금씩 다른 시간과 환경 속에서 일어나므로 뇌 속에서도 서로 다른 기억으로 인식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같은 경험을 반복할 때 그 기억이 같은 뇌 위치에 저장되지 않고 유동성이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뇌에서 기억이란 고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들은 다이내믹하게 스위칭 된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소리 공포 조건화 학습으로 재배치되는 기억 엔그램. 기존 엔그램 세포의 시냅스 가소성이 감소하며 연결성이 약해지고 새로운 엔그램이 형성되어 공포 기억을 표상한다(자료=KAIST)
반복적인 소리 공포 조건화 학습으로 재배치되는 기억 엔그램. 기존 엔그램 세포의 시냅스 가소성이 감소하며 연결성이 약해지고 새로운 엔그램이 형성되어 공포 기억을 표상한다(자료=KAIST)

◇KAIST 한진희 교수 연구팀, 뉴런 교체에 의한 기억저장 규명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은 살아있는 생쥐 뇌에서 기억저장 뉴런(신경 세포)을 표지하고 추적,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때 원래 존재하던 오래된 기억 뉴런이 새로운 뉴런으로 교체됨을 규명했다고 3일 밝혔다.

KAIST 생명과학과 조혜연 박사가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셀 프레스(Cell Press) 그룹의 오픈액세스(Open-access)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10월 22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논문명: Turnover of fear engram cells by repeated experience).

연구팀은 ‘뉴런 스위칭’을 가능하게 하는 기작으로 기초과학연구원(IBS) 김은준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이전에 경험했던 학습을 다시 하면 기존 기억 뉴런에서 시냅스 연결이 감소하는 반면, 새로 참여하는 뉴런에서는 시냅스 연결이 증가함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같은 기억은 같은 뉴런에 계속 저장됨으로써 경험이 누적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고,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때 뇌에서 오히려 뉴런들이 다이내믹하게 새로 교체됨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뉴런 교체는 기억 업데이트의 중요한 기작으로 생각되며 노화, 퇴행성 뇌 질환에서 기억상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억 뉴런을 표적으로 해서 원하지 않는 기억을 삭제한다든가, 혹은 퇴행성 뇌 질환에서 기억상실 억제, 복원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 기억제어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게티이미지뱅크

◇기억 뉴런을 표적으로 퇴행성 뇌질환, 치매 치료법을 열어줄 새로운 패러다임 기대

연구팀은 반복된 경험에 노출되었을 경우 기억을 저장하는 뉴런들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의문을 품었다.

뇌에서 기억은 기억 엔그램이라는 특정 신경 세포 집단으로 표상된다. 뉴런 활성화 이미징, 세포 표지와 조작 기법을 이용한 수십 년간의 연구들이 다양한 뇌 영역에서 기억저장에 관여하는 신경 세포 앙상블을 찾아냈다.

이처럼 기존 연구를 통해 같은 학습의 반복으로 형성된 기억은 같은 신경 세포 집단을 통해 계속 저장되고 강화될 것으로 추측돼왔지만, 실제로 신경 세포 수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연구팀은 반복 학습의 엔그램 재구성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생쥐의 청각 공포 조건화를 이용했다. 이 실험은 중립자극인 소리와 무조건자극인 전기 충격을 동시에 주어 이후 소리만 들려주었을 때도 공포 반응을 일으키도록 학습시킬 수 있다. 한 번의 페어링만으로도 강력한 연합 기억을 만들 수 있고, 편도체에서의 기억 엔그램 형성 원리도 잘 알려져 학습 패러다임으로 널리 사용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생쥐 뇌 편도체(Amygdala) 영역에서 기억저장 세포를 표지하고 광유전학 기법으로 조절하는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통념과 달리 첫 학습 하루 후에 같은 학습을 반복했을 때 ‘같은’ 기억이 전혀 다른 세포들을 통해 다시 저장되고 회상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반복 학습된 기억이 첫 번째 학습으로 형성된 기억 엔그램을 억제하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반복 학습 후에 기존 엔그램에서 시냅스 가소성이 감소했다. 시냅스는 신경 세포 간의 정보가 전달되는 구조적인 장소로, 시냅스의 활성 정도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지속해서 변화 가능한 것을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라 부른다. 즉, 시냅스 가소성이 감소했다는 것은 경험이 반복되면 기존의 기억 엔그램이 기억 회로상에서 연결이 약해지기 때문에 기억 발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 기억 엔그램이 반복 학습된 공포 기억에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기억 엔그램을 광유전학 기법으로 자극했을 땐 공포 반응이 나타났다. 기존 기억 엔그램의 연결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억 정보를 간직한 채 ‘휴면 엔그램(Silent Engram)’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결과다.

또한 연구팀은 반복 학습된 공포 기억이 두 번째 학습 때 활성화된 편도체 뉴런들에 새로 저장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같은 경험의 기억이 처음과 다른 세포 집단에 인코딩된다는 사실을 추가로 입증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한진희 교수는 “기억은 고정돼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에서 그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들은 다이내믹하게 스위칭 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중요한 발견이다ˮ라며, ”앞으로 기억 뉴런을 표적으로 해서 원하지 않는 기억을 삭제한다든가, 혹은 퇴행성 뇌 질환에서 기억상실 억제, 복원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 기억제어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것ˮ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기억 흔적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학문적 의미가 있으며, 뇌세포 사이의 연결이 계속 무너져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치매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열어줄 수 있는 중요한 잠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오타임즈=김수진 기자] sjkimcap@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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