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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옷 벗고 ‘디지털’ 새 옷 입는 병리학
‘아날로그’ 옷 벗고 ‘디지털’ 새 옷 입는 병리학
  • 염현주 기자
  • 승인 2021.06.30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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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곤란’ 검체 슬라이드, 영상 파일로 만들어 간편하게 관리
2025년까지 글로벌 시장 9억 9,900만 달러로 성장
AI, 5G와 접목 시도도 활발...“AI 판독 수가도 포함해야” 목소리도

[바이오타임즈] 병리학은 병(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병의 원인, 과정, 결과를 분석해 병의 원리를 밝히는 게 목적이다. 의학의 시작과 출발점을 같이 하는 병리학이 ‘디지털’이라는 새 옷을 입고 있다. 디지털 병리학(Digital Pathology)은 병리과 업무 핵심인 검체 슬라이드 분석을 디지털로 전환한 것이다. 전 세계 디지털 병리학 시장은 2025년까지 약 9억 9,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Pxhere)
(사진=Pxhere)

‘처치 곤란’ 검체 슬라이드, 영상 파일로 간편하게

검체 채취는 병리과의 기본 업무다. 병리 의사는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에 유리 슬라이드(검체 슬라이드)를 씌우고 현미경으로 판독해 병을 진단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한 해 수십만 장씩 새로 생기는 슬라이드를 무제한 보관할 수는 없다. 환자 병력 관리 때문에 폐기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슬라이드 보관 전용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대병원은 경북 문경 연수원에 따로 슬라이드 보관소를 마련했다. 

디지털 병리학은 이 ‘처치 곤란’한 검체 슬라이드를 디지털 영상 파일로 바꾸는 것이다. 시작은 영상 표준화다. 스캐너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장된 영상을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한다. 표준화를 마친 영상은 전용 관리 플랫폼에 올려 기존 전자건강기록(EMR), 병리정보관리시스템(LIS)과 연동시킨다. 관리 플랫폼에는 △병변 자동 측정 △트래킹 맵 △비교 모드 등 현미경을 대체할 기능이 탑재돼 있다. 

디지털 병리 시스템은 초기 도입 비용이 들고, 인력 투자도 요구된다.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뒷받침되는 ‘빅5’ 병원이 국내 도입을 주도하는 이유다. 삼성서울병원은 2019년 7월 의료용 소프트웨어 업체 인피니트헬스케어의 디지털 병리 솔루션을 도입하고 EMR 연동을 마쳤다. 서울아산병원은 2023년까지 모든 병리 데이터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인피니트헬스케어 디지털 병리 솔루션의 워크플로우(출처=인피니트헬스케어)
인피니트헬스케어 디지털 병리 솔루션의 워크플로우(출처=인피니트헬스케어)

“2025년까지 글로벌 병리학 시장 규모 9억 9,000만 달러로 성장”

해외는 병리 업무의 디지털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 MSK 암센터, MD앤더슨 암센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의료 기관 400여곳이 디지털 병리 솔루션을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다국적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7월 MSK 암센터에서 스핀 오프한 디지털 암 병리학 업체 페이지(Paige)에 1,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페이지가 시리즈 B 투자로 유치한 총금액은 7,0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시장조사 전문 기관 더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병리학 시장은 2025년까지 9억 9,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연평균 12.5%의 성장률이다. 더인사이트파트너스는 “디지털 병리학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시장이 확립돼 있다”며 “특히 중국 정부의 지원, 인도의 의료 인프라 개발 등으로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꾸준히 늘어나는 암 환자 때문이다. 병리과는 조직 검사와 세포 검사를 통해 △종양의 악성, 양성 여부 △암 병기 △암 종류 등 암 관련 핵심 정보를 제공한다. 매년 암 유병자 수가 6~7%씩 늘어나면서 암 질환에 대한 정밀 분석 수요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병리학은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절반으로 압축해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준다. 
 

루닛 스코프 실행 화면(사진=루닛)
루닛 스코프 실행 화면(사진=루닛)

AI, 5G 접목 시도도 활발...“급여수가 재분류해야” 목소리도 

디지털 병리학과 인공지능(AI), 5G의 접목도 시도된다.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이 개발하고 있는 ‘루닛 스코프(Lunit SCOPE)’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검체 슬라이드에서 학습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세포 조직을 자동 분석, 짧은 시간 안에 암을 진단한다. 환자별 항암제 투약 반응율도 AI로 분석해 예측해준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KT와 손잡고 ‘5G 스마트 혁신 병원’ 구축을 위한 시범 사업에 나섰다. 사업 항목 가운데 ‘5G 디지털 병리 분석’은 장당 4GB 수준의 고용량 병리 데이터를 5G로 끊김 없이 빠르게 전송하는 기술이다. KT는 “이전까지는 수술 중 떼어낸 조직을 분석하려면 병리과 교수가 직접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며 “5G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병원 내 사무실에서도 고용량 병리 데이터 조회할 수 있고, 여러 병리과 교수진이 판독에 참여해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병리 업무의 디지털 전화에 따라 의료수가 재분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계측 병리’로만 업무가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AI의 ‘디지털 병리’와 인간의 ‘계측 병리’로 나눠서 수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대한병리학회와 함께 AI의 급여 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있다. 

 

[바이오타임즈=염현주 기자] yhj@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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