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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의약품, ‘시장성 낮은 약’에서 ‘돈 되는 약’으로 패러다임 전환
희귀의약품, ‘시장성 낮은 약’에서 ‘돈 되는 약’으로 패러다임 전환
  • 박세아 기자
  • 승인 2021.06.16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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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업계, 성장 가능성 높은 희귀의약품 개발에 주목
미충족 수요가 높은 분야라 개발에 성공만 하면 사용될 확률 높아
신속 심사, 세제 감면, 임상 2상 이후 조건부 판매 등 파격적 혜택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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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타임즈] 유병(有病) 인구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 바로 희귀질환이다. 나라마다 희귀질환의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이처럼 정의했다.

희귀의약품은 희귀질환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대체 가능한 의약품이 없거나 대체 가능한 의약품보다 현저히 안전성 또는 유효성이 개선된 의약품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다.

그동안 제약업계에서는 희귀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낮았다. 해당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신약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투자한 비용에 비해 시장이 너무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최근 희귀의약품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과 지원이 영향을 미쳤으며, 제약업계도 기존 약품의 포화 상태 속에서 새로운 먹거리로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미충족 수요가 높은 분야라 개발에 성공만 하면 사용될 확률이 높고, 가격도 높게 책정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임상시험 지원, 독점권 부여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약’에서 ‘돈 되는 약’으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전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2년 1,720억 달러에서 2026년에는 2,55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정부가 주도하여 희귀질환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희귀질환 관리 및 치료제 개발 촉진을 위한 법령을 제정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희귀의약품 시장을 이끄는 곳은 역시 미국이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1983년에 희귀의약품법(US Orphan Drug Act)을 제정하여 희귀의약품 개발 기업에게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또한 미국 FDA와 유럽 EMEA (European Medicines Agency)는 희귀의약품 승인 과정을 더욱 간소화하여 희귀의약품 제약업체들의 부담을 줄이고 의약품 공급을 용이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FDA는 ‘희귀 의약품 지정(Orphan Drug Designation)’ 제도를 통해 희귀·난치성 질병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치료제 개발과 허가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신속 심사, 세금 감면, 허가 신청 비용 면제, 임상 보조금 지원, 동일 계열 제품 중 처음으로 시판 허가 승인 시 7년간 시장 독점과 임상 2상 이후 조건부 판매 가능이라는 파격적 혜택을 제공한다.

아울러 임상연구네트워크(RDCRN, Rare diseases clinical research network)을 통해 임상연구 등을 지원하고, 환자 레지스트리 데이터 표준을 설정하고 통합 및 공유하기 위한 RaDaR(Rare Diseases Registry) 프로그램과 치료 후보물질의 전임상을 지원하는 TRND(Therapeutics Rare and Neglected Disease)를 수행하고 있다.

EU에서는 FP7(EU 7th Framework Programme for research)와 Horizon2020을 통해 희귀질환과 관련된 20여 개의 프로젝트에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1991년에 의약품-희귀의약품법을 제정했으며, 일본은 1993년에 약사법 개정 등을 통해 희귀의약품 개발을 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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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희귀의약품 개발 현황은?

우리나라는 2016년 희귀질환관리법 시행 이후 2018년 9월부터 희귀질환을 지정하고 매년 그 목록을 발표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17년부터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사업을 신설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크론병, 아밀로이드증, 주직구증식증, 희귀사구체 신염, 전신 혈관염 및 시신경척수염을 대상으로 연구 수행 중이다.

식약처의 희귀의약품 지정 목록에 따르면 2020년 6월 1일 기준 국내에서 지정된 희귀의약품은 300개, 개발단계에 있는 희귀의약품은 33개에 이른다. 지난 2019년에는 11개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는데, 2020년에는 24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희귀의약품을 개발할 때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신속심사 대상에 포함돼 임상 2상만으로도 허가 및 출시가 가능하며, 임상시험 보조금 지원, 시장독점권 부여, 조건부 판매 허가 등의 혜택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임상에서 많은 대상자를 모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이점이다.

희귀의약품은 허가 절차도 다른 신약에 비해 간소하다. 허가 과정에서 ‘제조/품질 관리를 위한 기준 빛 시험 방법 자료’ 등 복잡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안정성/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 시험도 다른 제품보다 수월하다. 일부 제품은 임상 시험에 통과하기 전이라도 미리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이를 ‘개발 단계 희귀의약품’이라고 부르는데, 약리기전이나 비임상 시험 자료 등을 고려했을 때 대체의약품보다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현저히 높은 경우에만 지정될 수 있다. 물론 판매 허가는 임상 단계를 거쳐야 한다.

국내외 희귀의약품 지정 건수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미국 FDA의 신약 승인 건수 53건 가운데 31건(58%)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희귀의약품 품목 허가를 받은 건수는 총 24품목으로, 11건의 허가를 받은 2019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상승 요인으로는 2015년 7월 개정 규정에 따라 강화된 희귀의약품의 품목허가 제출자료 요건을 업계가 충분히 소화하고 있으며, 희귀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미약품은 지난 한 해에만 2,200억 원을 희귀의약품을 포함한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했다(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은 지난 한 해에만 2,200억 원을 희귀의약품을 포함한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했다(사진=한미약품)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희귀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는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6개 신약후보 물질을 10건의 치료범위(적응증)로 미국과 유럽, 국내에서 총 17건의 희귀의약품 지정 기록을 갖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 한 해에만 2,200억 원을 신약 연구개발에 쏟아부었으며, 이 중 희귀의약품 개발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경구용 비만 치료제 ‘LB54640’는 지난해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고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의 신약 후보물질 ‘DWN12088’은 지난 달 FDA로부터 전신피부경화증에 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이 후보물질은 2019년 특발성 폐섬유증에 대해서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항암 신약후보 물질 ‘아이발티노스타트’는 2019년 췌장암 치료제, 2020년 간암 치료제, 2021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각각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제일약품의 신약개발 부문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췌장암 신약후보 물질 ‘JPI-547’은 식약처로부터 ‘BRCA 변이 또는 HRD 양성인 수술이 불가능한 진행성 또는 전이성 췌장암’에 대해 개발 단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이 물질은 지난 3월 FDA에서도 췌장암 치료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압타바이오와 삼진제약이 공동연구 중인 혈액암 치료제 ‘Apta-16(SJP1604)’도 FDA의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의약품의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제약사들에게 희귀의약품은 바이오시밀러에 이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다”라며 “다양한 정책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개발만 한다면 큰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희귀의약품 개발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바이오타임즈=박세아 기자] news@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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