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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상어 게놈 분석으로 '수명’의 비밀 푼다
고래상어 게놈 분석으로 '수명’의 비밀 푼다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8.19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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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 고래상어 표준 게놈 구축
생물 노화·진화 연구에 가시적 성과 얻어

[바이오타임즈] 갈라파고스땅거북, 북극고래, 그린란드상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수백 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장수 동물들이다. 그동안 인간 노화와 장수의 비밀을 풀기 위해 국내외 연구진들은 이들의 생태와 유전자 등을 연구해 왔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은 역시 장수 동물의 하나인 고래상어의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여, 그 결과를 지난 3일 세계적인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일본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은 세계 최초로 고래상어를 장기 사육하고 있다. (출처: 독자 정아영님 제공)
일본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은 세계 최초로 고래상어를 장기 사육하고 있다. (출처: 독자 정아영님 제공)

가장 크고 오래 사는 어류, 고래상어

고래상어는 비공식적 기록이 최대 길이 20m, 무게 45t에 이르는 지구에서 가장 큰 어류다. 얼핏 보면 고래를 닮았으나 포유류인 고래와 달리 꼬리지느러미가 수직으로 뻗어 있는 등 어류의 신체적 특징을 지녔다. 엄연한 상어지만 이빨이 매우 작고 움직임도 느린 편이다.

수면 근처에서 플랑크톤이나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을 사냥하다 간혹 발견되기도 하는데, 매우 온순하고 사람이 접근해도 공격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필리핀 오슬롭에서는 환경보호단체와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고래상어 투어가 운영 중이다.

고래상어는 일정한 서식지 없이 지중해를 제외한 전 세계의 열대·아열대 및 온대 해역을 헤엄쳐 다닌다. 표층 수온이 21℃보다 낮은 곳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인해 제주도 연안과 남해안 등지에서도 출현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고래상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EN: endangered)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9월부터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보호 대상 해양생물이다.

보호 대상 해양생물은 포획뿐 아니라 혼획(어획 대상 종에 섞여 다른 종류의 물고기가 함께 잡히는 것)도 금지하고 있는데, 보호 대상 해양생물로 지정되기 전인 2012년 제주 바다에서 혼획된 새끼 고래상어 두 마리를 제주도의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보유했던 적이 있다. 고래상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수족관에 옮겨진 후 곧 폐사했고, 남은 한 마리도 점점 건강 상태가 나빠지며 논란이 계속되자 2012년 9월 성산포 앞 먼바다에 방류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 연구진은 아쿠아플라넷 제주로부터 고래상어 샘플을 받아 하버드대학교, 서울대학교, 제주대학교 및 유전체 분석 기업인 클리노믹스 등과 공동 연구를 통해 고래상어 유전체 정보(게놈 genome)를 해독했다. 하버드대학교의 조지 처지 교수와 뉴멕시코대학교의 제레미 에드워드 교수가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고래상어(파란 박스 표시)와 사람(빨간 박스 표시)을 포함한 총 85종 생물체의 비교 연구를 통해 게놈이 가지는 물리적인 특성들과 몸무게, 수명, 기초 대사량 등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할 수 있다. (출처: biorxiv.org)
고래상어(파란 박스 표시)와 사람(빨간 박스 표시)을 포함한 총 85종 생물체의 비교 연구를 통해 게놈이 가지는 물리적인 특성들과 몸무게, 수명, 기초 대사량 등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할 수 있다. (출처: biorxiv.org)

연구진은 먼저 게놈 해독기를 통해 수십억 개의 DNA 염기서열을 생산했다. 이렇게 얻어진 짧은 단위 염기서열을 다시 조립하여 32억 개의 염기쌍을 가지는 고래상어 표준 게놈 지도를 구축하고, 이 표준 게놈 지도로부터 28,483개의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정보를 예측해 분석에 사용했다. 구축된 고래상어 표준 게놈과 다른 생물체의 전장 게놈을 대조한 결과, 고래상어의 ‘인트론(intron)’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래상어 장수의 열쇠, 인트론

DNA를 구성하는 아미노산 서열 중에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암호화 부분을 엑손(exon), 진핵생물에서 발견되는 나머지 비암호화 부분을 인트론이라 한다. 인트론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월터 길버트 박사가 1978년 ‘네이처’지에서 언급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전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쓰레기(junk) DNA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진화과정에서 진핵생물이 다양한 유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여분의 구조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대부분의 인트론은 엑손보다 매우 길고, 일반적으로 진화한 생물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유전자 하나에 평균 8~9개의 인트론이 존재하며, 전체 유전자 중 인트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엑손의 약 22배에 달한다. 유전자의 길이가 인트론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UNIST 연구진은 “다른 종에 비해 고래상어 게놈이 더 긴 인트론을 가지는 것은 기초대사량과 관련 있기 때문”이라며 인트론 총 길이가 고래상어 수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히 ‘크다 혹은 작다’로 표현되는 수치적인 게놈의 크기가 아닌, 길이가 긴 게놈이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그 정보들을 파악하면 수명과 같은 생물학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몸집(생물체 무게), 기초대사량, 게놈 크기 등 수명과 관련 있다고 보고된 요인과 고래상어의 게놈 특성을 보여주는 각종 요소를 다른 84종의 생명체와 비교·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고래상어는 특히 다른 생물체보다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형태가 많았다. 길이가 긴 인트론 부위에서 무작위에 의한 서열이 아닌 규칙성이 있는 염기서열의 반복이 잇따라 발견됐는데, 이는 인트론 부위가 또 다른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박승구 UNIST 박사는 “기능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CR-1’, ‘Penelope’와 같은 반복서열이 다른 생물 종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많았다”며 인트론의 새로운 기능 중 일부가 노화와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인트론 내에 존재하는 반복서열 종류가 생물종(고래상어는 파란 점, 사람은 빨간 점으로 표시)에 따라 다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LINE/CR1, LINE/CR1-Zenon, LINE/Penoelope 반복서열은 고래상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출처: PNAS)
인트론 내에 존재하는 반복서열 종류가 생물종(고래상어는 파란 점, 사람은 빨간 점으로 표시)에 따라 다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LINE/CR1, LINE/CR1-Zenon, LINE/Penoelope 반복서열은 고래상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출처: PNAS)

또한 고래상어의 신경 관련 유전자들이 긴 인트론을 갖는다는 사실도 최초로 밝혀졌다. 신경 관련 유전자는 생물 진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신경 관련 유전자들은 길이가 길수록 유전자가 잘 발현되고 발현 조절도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고래상어 게놈에서도 생명 활동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뉴런 간의 신호전달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가진 유전자의 길이가 다른 유전자 길이보다 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즉 고래상어는 신경 연결 유전자가 길기 때문에 기초대사 조절 능력이 우수하고, 따라서 긴 수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 연구로 ‘수명의 질’ 높인다

야생에서 평균 20~3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상어들에 비해 고래상어는 3배가 넘게 산다. 가장 오래 산 개체가 100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다고 하지만, 대부분 발견된 사체를 이용해 연구하기 때문에 고래상어의 정확한 장수 원인을 밝히는데 필요한 나이나 수명, 몸집 등 가장 기본적인 정보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이번 고래상어 게놈 분석 연구로 고래상어의 긴 수명에 관한 연구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상어는 태어나서 빠르게 성장하다가 10년 정도 지나면 자라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기는 하나, 거의 평생에 걸쳐 자란다. 연구진이 제시한 노화와 관련된 인트론의 새로운 기능이 밝혀진다면, 느린 성장 속도와 긴 수명의 비밀에도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고래상어의 노화 연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100세 시대이기는 하나 인간 수명에 천장(한계)이 존재한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출생과 사망 시점이 서류로 확인된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875년에 태어나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잔 칼망이다. 칼망 할머니가 세운 122세의 수명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연구팀은 인구 통계 자료가 남아 있는 18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약 150년 동안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에서 100세 이상 산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의 최대 수명은 115세라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연구진은 “칼망 할머니의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한 해에 115세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만분의 1 정도”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노화를 방지해 ‘수명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연구가 각광받고 있다. 건강 관련 정보에서도 ‘장수’보다는 ‘웰빙’이 트렌드다.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는 최대한 노화를 늦춰 기대수명 중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늘리자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인간게놈 전체의 염기서열이 밝혀졌음에도 노화를 직접 유도하는 유전자는 찾을 수 없었다. 세포 시계의 역할을 담당하는 ‘텔로미어(telomere)’나 정상적인 세포는 약 50회가량 분열한 후 분열 능력을 상실한다는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 등의 이론 역시 수명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노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노화를 촉진하는 유전자 대신 노화를 억제하는 유전자나 유전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고래상어의 게놈을 비교·분석한 이번 연구는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물 종의 노화와 장수의 비밀을 풀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타임즈=정민아 기자] news@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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