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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예비판결문 전문 공개··· 이의 제기하는 대웅제약 속내는?
ITC 예비판결문 전문 공개··· 이의 제기하는 대웅제약 속내는?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8.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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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대웅제약 균주, 메디톡스서 왔다”
11월 6일 예정된 최종판결··· 예비판결 번복 드물어
대웅제약, 480억 규모의 에볼루스 전환사채 매입

[바이오타임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가 지난달 6일(현지 시각) 예비판결에서 대웅제약의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 Jeuveau)를 불공정 경쟁의 결과물로 보고 10년간 수입금지를 권고한 데 이어, 8월 6일 예비판결문 전문을 ITC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지난 6월 식약처의 메디톡신 품목허가 취소 처분으로 악전고투하던 메디톡스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반면, 대웅제약은 수백억 원을 소송에 쏟아붓고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균주 전쟁’, 메디톡스가 승기 잡으며 일단락

지난달 6일 ITC 행정판사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고 예비판결하며, 대웅제약이 미국에서 판매 중인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를 10년간 수입금지하는 명령을 최종 결정권을 가진 ITC 위원회에 권고했다. 대웅제약이 나보타를 독점 파트너사인 에볼루스와 함께 미국으로 수출해 판매한 것이 1930년 제정된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고 보고 미국 시장에서 배척하겠다는 것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원료인 균주 출처를 놓고 햇수로 5년째 국내외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메디톡스 측은 국내외에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지난해 1월에는 엘러간과 함께 ITC에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공식 제소했다. 국제 로펌인 클리어리 가틀립(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 LLP)이 메디톡스를, 미 연방검사 출신인 김상윤 변호사가 공동 설립한 코브레 앤 김(Kobre & Kim)이 대웅제약을 대리했다.

ITC는 지난해 2월 28일 조사를 개시해 한국과 미국 내 여러 관계자 증언을 포함하여 집중적인 사실 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 소견을 수집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4일부터 7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증거 청문회 형식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ITC는 메디톡스가 지정한 전문가인 폴 카임 박사의 분석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박테리아 등 미생물 간 유전 관계에 관한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카임 박사는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는 6개의 돌연변이를 공유하는데, 이는 유전자은행에 공개된 다른 보툴리눔 균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카임 박사는 “약 370만 개의 염기로 구성된 균주의 DNA 염기서열 중 정확하게 동일한 6개 위치에서 다른 보툴리눔 균주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SNP가 독립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박테리아 변종과 제조공정을 유용했다는 주장을 지지했다.

예비판결문에 인용된 Keim 박사의 보고서 (출처: the final initial determination on violation in Certain Botulinum Toxin Products, Processes for Manufacturing or Relating to Same and Certain Products Containing Sam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nvestigation No. 337-TA-1145)
예비판결문에 인용된 Keim 박사의 보고서 (출처: the final initial determination on violation in Certain Botulinum Toxin Products, Processes for Manufacturing or Relating to Same and Certain Products Containing Sam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nvestigation No. 337-TA-1145)

예비판결문에서 행정판사는 “이 특징적인 DNA 지문은 다른 보툴리눔 균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염기서열 분석 자료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가 일치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고 봤다. 또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가 약 370만 개의 염기 중에 불과 최대 13개의 염기에서만 차이를 보인다는 카임 박사의 분석 결과를 인용하면서 “이처럼 대웅제약의 균주가 메디톡스의 균주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메디톡스의 균주로부터 유래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당초 대웅제약의 전문가인 셔먼 박사는 양 균주가 145개의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단일 염기 다형성)에 의해 구분된다고 주장하였으나, 판결문에 의하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는 10개의 SNP 차이만을 가진다는 점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행정판사는 “고소인들은 도용에 대한 의혹을 설명하기 위한 증거를 제시했지만, (메디톡스의 전 직원인) 이 박사가 메디톡스의 균주를 대웅제약에 제공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균주 도용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모르지만, 유전적 증거로 도용이 입증됐다는 게 ITC의 판단이다. 이 같은 내용은 274쪽 분량의 예비판결문에 적시됐다. ITC 행정판사의 예비판결문은 지난 6일 영업비밀과 관련된 내용이 삭제된 형태로 ITC 홈페이지에 공개되었다.

 

희비 엇갈린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메디톡스는 10일, ITC의 예비판결문을 통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나보타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다며 환호했다. 메디톡스 측은 “메디톡스의 균주와 메디톡스 균주의 기원인 Hall A hyper 균주는 모두 실험실에서 개발되었는데, 메디톡스 균주와 지극히 유사하고 6개의 독특한 SNP를 공유하는 균주를 토양에서 분리했다는 대웅제약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메디톡스는 행정판사가 ‘비현실적으로 짧은 대웅제약의 개발 기간’,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는 메디톡스 제조공정과의 유사성’, ‘자체 개발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 부재’를 근거로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제조공정에 관한 영업비밀을 불법적으로 유용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예비판결문에 명시된 행정판사의 결론 (출처: the final initial determination on violation in Certain Botulinum Toxin Products, Processes for Manufacturing or Relating to Same and Certain Products Containing Sam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nvestigation No. 337-TA-1145)
예비판결문에 명시된 행정판사의 결론 (출처: the final initial determination on violation in Certain Botulinum Toxin Products, Processes for Manufacturing or Relating to Same and Certain Products Containing Sam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nvestigation No. 337-TA-1145)

대웅제약이 제조공정 개발에 소요되었다고 하는 기간이 현저히 짧다는 점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진행 중인 대웅제약의 기술침해 조사에서도 지적한 부분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균주 취득 후 제품 개발까지 메디톡스는 18년이 걸렸지만, 대웅제약은 3년이 걸렸다. 중기부는 지난해 메디톡스의 신고를 받고 대웅제약이 보톡스 제품을 자체 개발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대웅제약 연구소에 대한 현장 조사를 요청했으나 대웅제약은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중기부는 규정에 따라 1차로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대웅제약은 ITC 소송이 걸려 있어 현장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대웅제약은 ITC 예비판결에 대해서도 7월 19일 이의신청서를 ITC에 제출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ITC 행정판사는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오로지 엘러간의 편에 서서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부당하고 편향된 결정을 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비결정은 명백한 16s rRNA 차이 등 논란이 있는 과학적 감정 결과에 대해 메디톡스 측 전문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했거나, 메디톡스가 제출한 허위 자료 및 허위 증언을 진실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이 대웅제약의 시각이다. 대웅제약은 “행정판사는 사실인정을 기반으로 직접 증거나 증인의 신빙성에 대해 평가하기보다 DNA 분석을 통한 추론 위주로 영업 비밀의 유용을 결정했다”며 “이번 예비판결은 ITC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결정으로, 의회가 위임한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악재 쌓인 대웅제약, 미국 시장에 사활 건다

대웅제약은 “중대한 오류로 가득한 예비결정을 명백하게 탄핵하고 11월의 최종결정에서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ITC 예비판결에서도 승리를 예상했던 만큼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보도자료에서 ‘Initial Determination’이라는 단어를 ‘예비판결’이 아닌 ‘예비결정’이라고 칭하며 이번 ITC 결정이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지지 않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통상 ITC는 판결 번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예비판결 결과가 최종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웅제약은 2014년 나보타 국내 출시 이후 미국과 유럽, 러시아, 브라질, 캐나다 등 수출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2월 나보타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 승인을 받고 5월 정식 출시하면서 2조 원에 달하는 미국 시장에 국산 보톡스 최초로 진출한 바 있다.

예비판결 결과가 그대로 확정되면 대웅제약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국내 법원들도 ITC 소송 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결과를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메디톡스는 국내 민사소송에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Evolus Aesthetic 페이스북
출처: Evolus Aesthetic 페이스북

최근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 판매 파트너사인 에볼루스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대량 인수하며 미국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CB 권면 총액은 대웅제약이 보유한 현금자산의 약 88%에 달하는 4,000만 달러(약 480억 원)다.

일각에서는 미국 소송비용 등의 영향으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고, ITC 예비판결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은 마당에 무리한 투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나스닥에서 에볼루스 주가가 고점 대비 10분의 1수준으로 폭락하는 등 예비판결과 관련하여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자, 대웅제약이 ‘에볼루스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된 계약서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고의적인 위법행위 또는 중대한 과실이나 태만 행위를 하면 에볼루스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이 ICT 최종판결로 확정되면 메디톡스뿐만 아니라 에볼루스까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행정판사 의견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고 ITC의 예비판결을 행정판사의 오판이라고 지적하는 등 최종판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음에도 대웅제약이 강력한 공세를 펼치는 배경에는 전체위원회의 결정에서 예비판결을 뒤집지 못하면 안 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ITC의 최종판결은 오는 11월 6일로 예정되어 있다. 전체위원회는 예비판결의 전체 또는 일부에 대해 파기(reverse), 수정(modify), 인용(affirm) 등의 최종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 결정에 대해 이의가 있는 당사자는 14일 이내에 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최종판결이 확정되면, 60일간의 미 대통령 판단 및 승인 후 시행된다.

이때 대통령이 위원회에 거부 의사를 통지하면 통지일부터 위원회의 판결 및 수입배제명령 등 관련 구제조치는 그 효력을 상실한다. 또한 ITC의 최종판결로 인해 불리한 영향을 받은 자는 누구라도 최종판결 이후 60일 이내에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바이오타임즈=정민아 기자] sturzreg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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