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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물질 분해하고 전기 만드는 바이오 에너지원, 박테리아
오염 물질 분해하고 전기 만드는 바이오 에너지원, 박테리아
  • 정민아 기자
  • 승인 2020.07.27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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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니즈에서 에너지를 얻는 신종 박테리아 발견
금속 먹는 박테리아 활용한 바이오 배터리
친환경 나노물질 생산과 방사능 오염 제거에도 쓰여

[바이오타임즈] 수십억 년간 진화를 통해 박테리아들은 극도로 다양한 대사과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 중 금속에서 직접 전자 자체를 끌어와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박테리아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 정화에도 활용될 수 있어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Caltech) 연구팀이 방치한 실험도구에서 망가니즈(Mn)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새로운 박테리아를 발견해 화제가 되고 있다.

Scanning electron micrograph of manganese oxide nodules. Credit: Hang Yu/Caltech
Scanning electron micrograph of manganese oxide nodules. Credit: Hang Yu/Caltech

망가니즈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박테리아 발견

이번에 발견된 것은 지각에 세 번째로 많이 포함된 전이 금속인 망가니즈를 연료 공급원으로 사용하는 최초의 박테리아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미생물학자들은 우연히 이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칼텍의 환경미생물학 교수인 재러드 리드베터(Jared Leadbeater) 박사는 분필과 같은 형태의 망가니즈를 이용하여 이번 발견과는 상관없는 다른 실험을 했다. 실험에 사용된 탄산 망가니즈(II) 화합물로 코팅된 유리병을 연구실 싱크대 수돗물에 담가 놓은 채, 리드베터 교수는 몇 달 동안 캠퍼스 밖에서 일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유리병은 어두운색을 띤 물질로 덮여있었다.

리드베터 교수는 보도자료를 통해 “오랫동안 찾아온 미생물이 원인인지 궁금하게 여겨져, 이를 확실히 밝혀보려고 체계적으로 테스트를 시행했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리병의 검은색 물질이 망가니즈 산화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리드베터 교수는 칼텍이 위치한 “패서디나(Pasadena)의 수돗물 일부는 지하수를 퍼 올려 음용수로 이용한다. 이번에 발견된 박테리아의 친척뻘 되는 미생물이 지하수에 서식한다는 증거가 있다”라며, 지하수에 서식하고 있던 박테리아가 수돗물에 섞여 수도관 내에서 망가니즈 산화물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도관이 망가니즈 산화물에 의해 막혔다는 문헌 기록들은 많지만, 수돗물에 포함된 미량의 망가니즈가 산화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지하수와 관련된 화학적 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심해에서 ‘망가니즈 단괴’가 생성되는 과정을 밝히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문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먼저 이번 현상이 생물학적 과정에 의한 것인지 확인한 후, 망가니즈 산화물에 존재하는 박테리아를 배양해 약 70종을 발견했다. 이후 다양한 테스트에서 니트로스피라균문(Nitrospirae) 및 베타프로테오박테리아(Betaproteobacteria)에 속하는 2종의 박테리아를 공생 배양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탄산 망가니즈를 이 2종의 박테리아가 공동으로 산화시켰거나, 니토로스피라균문 박테리아가 단독으로 산화시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박테리아는 망가니즈가 산화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용해 망가니즈 단괴와 함께 성장했다. 이론상 망가니즈의 산화는 무기 화학적으로 독립 영양 미생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자들은 망가니즈에서 생존 에너지를 얻는 박테리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해 왔다. 그 존재를 예상한 지 100년 이상이 지나 드디어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출처: Nature Communications
출처: Nature Communications

차세대 바이오 에너지원, 금속 먹는 박테리아

망가니즈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박테리아는 이번 연구로 처음 발견됐지만, 다른 금속에서 전자를 끌어내 에너지를 얻는 박테리아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로도슈도모나스 팔루스트리스(Rhodopseudomonas palustris)는 자색 광합성 세균의 하나로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전자를 보통 철(Fe)의 산화 과정에서 공급받는 박테리아다. 피터 기르기스(Peter Girguis) 교수 등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철이 없는 환경에서 로도슈도모나스를 배양한 결과 전자가 풍부한 다른 금속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르기스 교수는 “미생물이 그동안 철을 직접 이용했다기보다 철 속 전자를 이용한 것”이라며 2014년 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5년 3월에는 영국 맨체스터대 제임스 번(James Byrne)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에서 로도슈도모나스를 이용한 바이오 배터리 가능성을 제시했다. 로도슈도모나스를 자철석과 함께 배양한 결과, 밝은 빛에서는 박테리아가 철로부터 전자를 끌어오지만 어두운 빛에서는 철에 다시 전자를 돌려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도슈도모나스가 빛의 세기에 따라 다르게 전자를 흡수하는 특성을 이용하여 낮에는 방전하고 밤에는 충전하는 바이오 배터리를 제작할 수 있다.

연구팀은 또한 인체에 흡수될 경우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6가 크롬이 로도슈도모나스와 반응하면 독성이 적은 3가 크롬으로 바뀐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로도슈도모나스가 미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 해결에 도움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미생물 연료 전지 연구의 대표적인 박테리아인 슈와넬라(Shewanella oneidensis)를 이용하여 처음 전기를 생산한 것은 국내 연구진이다. 슈와넬라는 흙과 물에 존재하는 흔한 박테리아인데, 혐기성 환경에서 우라늄·철 등의 금속 이온을 이용해 전자를 교환하며 호흡하는 특성이 있다. 199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병홍 전 책임연구원이 젖산을 먹이로 하여 슈와넬라를 이용한 미생물 연료 전지를 처음 구현했다.

나노튜브 생성사진 (출처: 광주과학기술원)
나노튜브 생성사진 (출처: 광주과학기술원)

이후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과 허호길 교수 연구진은 슈와넬라가 독성이 높은 비소(As)를 흡수하여 황화비소라는 노란색 침전물로 전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침전된 황화비소를 말려 자외선을 쬐면 전류가 흘렀다.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20~100nm(1nm는 10억분의 1m)의 독특한 나노튜브 성상이 확인되었다.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반도체 특성을 보인 것이다. 논문은 2008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리고 ‘네이처 나노 테크놀로지’에도 소개됐다. 

 

기름 유출, 방사능 오염의 해결책으로 부상

슈와넬라는 전기 생산 미생물로 연구되고 있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 정화 물질로도 주목받고 있다.

앞서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슈와넬라를 방사성 오염수에 넣으면 우라늄(U)을 이용한 호흡 과정에서 우라늄 6가 이온을 물에 녹지 않는 우라늄 4가의 나노 파티클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물에 녹아 있는 우라늄을 결정 형태로 만들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름 2~3nm의 미세한 나노 파티클은 일반 필터로 걸러낼 수가 없어 효용성이 떨어졌다.

2011년 11월 허호길 교수 연구진은 우라늄 변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한 결과, 슈와넬라 껍질에 우라늄 6가 이온이 길게 실 모양으로 달라붙어 매우 가는 나노와이어가 만들어진 후, 시간이 지나면 이 나노와이어가 우라늄 4가의 나노 파티클로 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노와이어는 표면적이 넓어 방사능 오염 정화에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슈와넬라를 이용하면 순도 높은 우라늄을 다시 얻을 수도 있다.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화학회에서 발간하는 ‘케미컬 커뮤니케이션’지에 실렸다.

또한 해양에 유출된 기름을 친환경적으로 제거할 때도 박테리아가 활용된다.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신진대사에 필요한 탄소와 에너지의 공급원으로 기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 대련항에서 발생한 송유관 폭발사고 때에도 약 23t의 박테리아가 기름 제거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름 먹는 박테리아 중 현재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것은 독일의 브라운 슈바이크 연구소와 빌레펠트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는 알카니보락스 보르쿠멘시스(Alcanivorax Borkumensis)다. 바다에 사는 이 박테리아는 강력한 산화효소를 이용해 원유·휘발유·석유를 분해한다. 독일 공동연구팀은 알카니보락스가 기름을 분해하는 과정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해독을 이미 완료했다.

이처럼 박테리아의 다양한 대사과정은 방사능 오염이나 기름 유출 같이 장기간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환경오염을 친환경적으로 해결하는 묘책으로 널리 연구되어 왔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망가니즈를 체내에 흡수한 박테리아는 탄산망가니즈에 포함된 전자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바이오매스(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로 전환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이들 박테리아가 탄소를 망가니즈에 흡착, 고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와 관련된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이오타임즈=정민아 기자] sturzreg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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