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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능선’ 넘은 첩약 급여화... 갈등의 골 깊어지는 의료계
‘8부 능선’ 넘은 첩약 급여화... 갈등의 골 깊어지는 의료계
  • 양원모 기자
  • 승인 2020.07.0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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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24일 건정심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
의료계 “강행 시 총파업 불사”... 한의계 “진작 시작됐어야”
본회의서 ‘의료일원화 뒤 사업 시행’ 채택하면 표류 가능성도

[바이오타임즈] 첩약 비용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시행의 8부 능선을 넘으면서 의학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시범사업 강행 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고, 한의계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급여화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첩약은 여러 약재를 달여 약봉지에 싼 한약을 말한다.

첩약 급여화는 2012년 박근혜 정부 때 처음 시도됐다가 참여 주체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4월 정부, 한의사, 한약사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져 몇 차례 회의가 진행됐다. 급여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중단됐던 협의체가 최근 재가동하면서 논의에 급물살을 탔다. 협의체는 6월 말 시범사업 시행안을 최종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본회의에 넘기기로 했다. 시범사업은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10월부터 실시된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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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앙숙 의료계, 한의계

첩약 급여화에 대한 의료계, 한의계 입장은 수평선을 달린다. 의료계가 가장 문제 삼는 건 안전성이다. 양의학의 약제만큼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첩약에 나랏돈을 지원할 순 없다는 것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첩약 급여화 도입의 필요성을 개진한 2018년 보고서를 언급하며 “첩약의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한의계의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에는 ‘원격진료’를 놓고 둘로 쪼개졌다. 의료계는 제대로 된 진료의 어려움, 오진 위험 등을 이유로 원격진료에 반대했지만, 한의계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원격진료의 적극 도입을 주장했다. 의료계와 한의계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수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의료계는 첩약 급여화가 국민 건강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과 직결돼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첩약은 동일한 성분과 효과, 제형의 한약 제제와 비교해 6배 이상 초과 비용이 발생한다”며 “향후 몇조 원 이상의 건보재정이 소요될지 모르는 첩약 급여화를 정부가 강행하려는 건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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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는 ‘환영’... 인기 한의원에선 부정적 반응도

한의계는 첩약 급여화를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지난 6월 22일 첩약 급여화에 대한 온라인 찬반 투표를 벌였다. 투표에 참여한 한의사 1만 6,88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만 682명(63.26%)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급여화 찬성’이 공식 입장이 됐다. 최혁용 한의협 회장은 “첩약 급여화는 한의약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해준다”며 “진작부터 추진됐어야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다만 37%라는 반대표가 보여주듯 모든 한의사가 급여화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일부는 급여화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잘 나가는’ 한의원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사업이 시행되면 한의사에게 돌아가는 행위 수가(진료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협의체에서 확정한 한의사의 행위 수가는 3만 2,490원. 비급여로 훨씬 높은 수가를 받는 한의원 입장에선 급여화가 오히려 수입을 위축시킬 수 있다.

한약사들도 첩약 급여화에 비판적이다. 급여화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무분별한 처방을 막으려면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종진 대한한약사회 부회장은 “한약은 조제와 탕전 과정에 따라서 같은 약재를 투입하더라도 그 결과물인 한약의 유효성분 함량이 천차만별이 된다”며 “조제 과정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 약효 균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제 과정을 표준화하고 조제의 전문가인 한약사가 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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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통과되면 3년간 1,500억 지원... ‘의료일원화’ 마지막 변수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건정심 본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급여 대상 질환은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3개이며 한의사 1인당 월 30건, 연 300건까지 급여 처방이 가능하다. 건정심은 공익, 사용자 단체, 근로자 단체, 시민단체, 의료계, 약업계 등에서 추천받은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건보 정책 관련 최고 의결기구다. 본회의에서 참석자 과반의 동의를 얻으면 시범사업 실시가 확정된다. 정부는 매년 500억 원씩 3년간 총 1,500억 원을 시범사업에 지원한다.

일단 분위기는 ‘무사통과’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그러나 막판 변수가 남았다는 관측도 있다. 시범사업을 의료일원화 이후로 미루자는 부대의견이 본회의에 함께 상정됐기 때문이다. 의료일원화는 양의학과 한의학 교육을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실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본회의에서 ‘의료일원화 이후 시범사업 실시’가 채택된다면 사업은 사실상 표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첩약 급여화의 운명을 가를 건정심 본회의는 오는 24일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다. 

[바이오타임즈=양원모 기자] ingodz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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