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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대변이식술' ∙∙∙ “똥도 약이 될 수 있다”
주목받는 '대변이식술' ∙∙∙ “똥도 약이 될 수 있다”
  • 염현주 기자
  • 승인 2020.04.14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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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의 대변 채취 후 환자에 이식
국내외에서 대변은행도 등장
보건복지부의 신기술의료 인정으로 시장확대 기대감 높아져

[바이오타임즈] 우리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흔해도 정작 쓰려고 찾으면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서 ‘똥’은 ‘흔한 것’ ‘하찮은 것’ 등 가치가 높지 않은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똥’이 ‘약’으로 쓰이는 시대가 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균, 치명적인 설사병 일으켜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 요소는 장(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최근 업무 스트레스, 서구화된 식습관, 불규칙한 수면시간 등이 장 속 유해균을 발생시키면서 과민성 대장증후군, 염증성 장질환 등을 유발해 장 건강이 위협 받고 있다. 이에 의학 전문가들은 장 건강 개선을 위해 프로바이오틱스를 꾸준히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균에 감염돼 설사가 지속되면 장마비, 독성 거대결장, 장천공, 쇼크 등이 발생하기도 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 이를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이라고 하는데 주로 ‘대변이식술’을 통해 치료한다.

CDI는 항생제를 계속 복용할 경우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으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균의 수가 급격히 증가해 생기는 장 질환이다. 이 균에서 분비되는 독소가 CDI를 일으키며 심각한 중증 설사로 지속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항생제를 중단 후 1~2주 정도 지나면 설사 증세는 완화된다. 또 균에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면역력이 강한 일부 사람들은 어떤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약 3만 명이 CDI로 사망했고 환자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대변이식술, 유산균 균형과 장내 면역력 높여


대변이식술은 CDI의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말 그대로 환자의 대장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 있는 유산균을 환자의 대장에 이식해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호주 소화기질환센터 토마스 보로디 센터장과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알렉산더 코럿 교수 공동연구팀이 지난 201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소화기내과학및간장학’(Nature Reviews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개제한 논문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해 CDI 환자의 장에 넣었더니 증상이 사라지고 약 90%가 완치됐다. 이는 클로스트리디옴 디피실 때문에 증식하지 못했던 유익균이 다시 활성화되도록 장내 면역력을 키우는 원리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건강한 대변 기증 받는 대변은행도 등장


해외에서는 CDI 외에도 크론병, 궤양성 장질환, 악성 변비 등에 대변이식술을 활용하고 있다.

대변이식술을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이 필요하다. 이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대변은행(Stool Bank)이 생겨났다. 대변은행은 혈액은행이나 정자은행처럼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대변을 기증받아 보관하는 곳이다. 장내 미생물을 추출, 분석하고 이를 환자에게 제공한다.

지난 2013년 미국에 설립된 대변은행 ‘오픈바이옴’(Openbiome)은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회당 40달러(한화 약 5만 원)의 보상을 주며 대변을 기증받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대변은 장내 미생물 연구로 쓰이며 장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배설물기증은행(NDFB)이 지난 2016년에 문을 열었다. 만성 장내 감염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건강한 장내 유익균’을 이식하고 이와 관련된 치료법과 의약품 개발 연구가 목적이다. 기증자는 익명으로 처리되고 가정에서 기증된 대변은 코 내시경이나 결장경 등을 이용해 이식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가공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대학병원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 이뤄져


대변의 가치가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에도 대변은행이 등장했다. 김석진좋은균연구소는 지난 2017년 아시아 최초로 대변은행 ‘골드바이옴’을 설립,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수집해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추출한 장내 미생물은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의 치료를 효율적으로 돕는다.

이에 앞서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는 대변이식술을 신기술의료로 인정했으며, 이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인하대병원 등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변이식술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먼저,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건강한 대변을 구하기가 어렵다. 건강한 대변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기증자의 흡연이나 음주 등 생활습관과 건강상태, 과거 병력, 가족력, 백혈구 수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여부는 물론 대변 속 유해균이나 기생충 감염여부 등이 꼼꼼히 확인되어야 한다. 비만이나 고혈압 환자, 변비가 있거나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대변을 기증할 수 없다. 김석진좋은균연구소 측은 “실제로 기증 받은 대변 중 약 3~5% 만이 대변이식에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변을 제공하기 원하는 사람 100명 중 4명 안팎만이 실제로 대변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변 채취 후 대변은행으로 보내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연구소 측은 “대변을 채취한 후 시간이 지나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거리 측면에 있어 서울∙경기권에서 채취된 변이 아니면 기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변이식술은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높은 문제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는 대변이식술의 임상성과를 모아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자료수집에 나서고 있어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날이 곧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타임즈=염현주 기자] yhj@bi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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